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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27 [BBC F1선정 최고의 드라이버 20인] 10. 페르난도 알론소(Fernando Alonso) (2)

BBC 원문 기사 : http://www.bbc.co.uk/sport/0/formula1/18957703

※ 몇몇 사진은 실제 BBC기사에는 없는것임을 알려드립니다.





페르난도 알론소(Fernando Alonso)


국적 : 스페인

그랑프리 참여 : 198회

월드챔피언 : 2회 (2005년, 2006년)

그랑프리 우승 : 30회

포디엄(시상대) : 86회

폴 포지션 : 22회

기타사항 : 슈마허의 연승행진을 깨뜨린 드라이버
               2013년 현재 F1 최고액 연봉자

※ 현역드라이버로 표시된 기록은 2013년 1월 현재 기록임




스페인 북부의 에스투리아스(Asturias)는 예로부터 험난한 산악지형으로 용맹하고 거친 용사들의 도시로 이름을 알려왔다. 이곳 출신의 페르난도 알론소는 그야말로 이 지역이 낳은 최고의 용사일 것이다.



F1 역사에 있어서 그만큼 끈질기고 살벌한 드라이버는 없었다. 매 랩마다 심장을 떨리게 만드는 극한의 드라이빙과 머신의 한계를 넘어서는(설령 머신이 망가졌다 하더라도) 모습은 그만이 가지고 있는 대단한 능력이라 할만하다. 그의 이런 능력은 그동안 그가 30번의 그랑프리를 우승하게 만들었던(F1 전체에서도 5위에 들어가는) 원동력이었다. 또한 올해(주: 2012년)의 우승들 만큼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줬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올 시즌(주: 2012년)이 시작하고 나서 페라리는 퀄리파잉에서 5위를 기록한게 최고의 성적이었다. 초반 8번의 그랑프리에서 알론소의 평균 퀄리파잉 성적은 8위였다. 그러나 8번의 그랑프리를 치른 후 그는 챔피언십 포인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고, 지난 독일 그랑프리(주: 2012 독일 그랑프리)의 우승으로 올 시즌 세 번째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한 지금까지도 그는 포인트에서 선두에 서있다.




2012년 독일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한 알론소




남들이 보기에 그의 이런 재능이 엄청난 선물이라 보겠지만, 알론소는 그런 반응에 상당히 겸손한 태도를 보여왔다. 2009년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아마도 전 빠른 드라이버는 아닐 겁니다. 물론 재능을 타고나지도 열심히 노력하는 타입도 아닙니다. 하지만 전 꾸준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항상 서킷에 있으니깐요”



그의 이런 말은 어느 조건에서나 불안정한 머신에서도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과감한 추월 능력과 영리한 드라이빙을 구사하는 평소 모습과는 뭔가 다르게 느껴진다. 그러나 평소 그가 라이벌들과 비교할 때의 차이를 본다면, 그가 평소하는 이런 말들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알론소가 확실히 빠른 드라이버이긴 하지만 퀄리파잉에서 뭔가 특별한 모습을 보여줄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 아무래도 2011년 싱가포르 그랑프리에서의 모습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지만 어쨌든 그의 그런 모습은 현재 같이 활동하고 있는 루이스 해밀턴(Lewis Hamilton)이나 세바스찬 베텔(Sebastian Vettel)에 비하면 흔한 일은 아니며 심지어 아일톤 세나(Ayrton Senna)가 간혹 보여줬던 실망스런 모습 만큼 자주 있는것도 아니다.



어쨌든 역설적이게도, 평소에 알론소는 머신의 문제가 있는 상태에서, 그만의 재능으로 이를 매꿔버리는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모습의 좋은 예는 역시 2006년 이탈리아 그랑프리일 것이다. 그는 소속팀인 르노(Renault)가 리어윙 부분의 바디워크를 충분히 끝내지 못한 상황에서도 5위로 퀄리파잉을 통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물론 후에 스튜어드들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페널티를 받게 되지만 말이다) 그의 엔지니어들이 후에 그의 차량이 얼마나 퍼포먼스를 잃었는지 계산해 봤는데 이론적으로 그의 머신은 다른 차량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아마도 당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지난 10년간의 퀄리파잉 중에 가장 놀라운 퀄리파잉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이탈리아 그랑프리는 그의 더블 챔피언을 향한 도전을 상당히 위태롭게 만들었던 대회였다.



2005년 그는 생애 첫 챔피언 타이틀을 르노 소속으로 따낸다. 당시 그는 맥라렌(McLaren)의 키미 라이코넨(Kimi Raikkonen)의 빠른 머신을 상대로(빠른 만큼 신뢰성은 안 좋았지만)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끈질긴 근성으로 따낸 타이틀이었다. 2005년의 우승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지만 알론소는 다음해 또 한 번의 역사를 쓰기위해 다시 챔피언 자리에 도전한다. 초반 압도적을 모습을 보여주면서 수월하게 타이틀을 따내는 듯 했으나, 시즌 후반으로 가면서 그를 왕좌에서 끌어 내리기 위해 치사한 수까지 사용하는 페라리(Ferrari)와 미하엘 슈마허(Michael Schumacher)의 역습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이 둘의 대결은 일본 그랑프리가 열리는 스즈카(Suzuka) 서킷에서 결정나게 된다.과거 아일톤 세나와 알랭 프로스트(Alain Prost) 그리고 슈마허와 미카 하키넨(Mika Hakkinen)이 챔피언 자리를 두고 최후의 일전을 치뤘던 그 곳에서 말이다. 정작 경기는 36랩을 돌 때 슈마허가 6년 만에 엔진블로우를 일으키며 알론소의 우승으로 끝나고 만다. 다음 대회로 치러진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알론소는 포디엄에 오르면서 최연소 더블챔피언이라는 기록을 달성한다.(주: 아쉽게 이 기록은 2011년 세바스찬 베텔에 의해 깨진다)



 

2006년 알론소는 르노에서 더블챔피언의 자리에 오른다



 

2002년 르노 팀의 테스트 드라이버로 입단한 그는 2003년에 젠슨 버튼을 대신하여 르노 팀의 정식 드라이버로 뛰게 된다. 이 결정은 당시 많은 영국 미디어로부터 비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에 비판을 제기했던 사람들은 2001년 그가 당시 미나르디(Minardi)(주: 2005년 까지 존재했던 이탈리아 국적의 팀, 하위권의 대표적인 팀 중 하나였다)의 빈약한 머신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데뷔시즌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르노에서의 첫 시즌 그는 놀라운 퍼포먼스를 몇 번 보여줬고 헝가리에서는 생애 첫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데뷔시즌의 모습으로 그의 잠재력에 의문을 제기하던 사람들은 모두 없어지게 된다. 르노에서 성공적인 시절을 보낼 동안, 그의 평소 성격의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팀 메이트가 종종 그를 꺾을 때 그는 자신을 통제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2001년 미나르디에서 데뷔한 알론소



 

이런 모습은 그가 2007년 맥라렌에 입단하면서 큰 문제가 되고 마는데, 신인이자 팀 메이트인 루이스 해밀턴은 그를 이길 만큼 매우 빠른 드라이버였기 때문이다. 알론소와 해밀턴 이 둘의 대결은 하나의 대서사시처럼 긴장감이 넘치는 배틀이 되었고, 시즌을 통틀어 누가 우세하다고 꼽을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고 만다.



당시 알론소는 팀이 해밀턴을 더 밀어주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페라리의 라이코넨과 펠리페 마싸(Felipe Massa)를 이기고 타이틀을 차지할 사람은 단 한명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맥라렌에서 자신을 퍼스트 드라이버로 기용했고 해밀턴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 둘 중에 챔피언이 되어야 할 사람은 자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런 부담감은 헝가리 그랑프리에서 폭발하고야 만다. 알론소는 팀에서 해밀턴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스파이게이트(주: 2007년 시즌 맥라렌이 페라리의 기밀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의혹으로 시작된 것이 사실로 판명된 사건으로 이 사건으로 당시 맥라렌의 테크니컬 디렉터인 마크 코건은 2년 자격정지를 받고 맥라렌은 그 해 시즌 컨스트럭터 점수가 무효화 됐다.) 와 관련해 FIA에 출석하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이 사건은 맥라렌과 알론소의 관계를 파멸의 길로 인도하고 만다. 또한 알론소의 평판도 안 좋아지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고 현재까지도 이 둘의 관계는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말할 순 없는 상황이다. 2008년 싱가포르 그랑프리에서의 승부조작 사건(주: 이른바 ‘크래쉬 게이트’라 불리는 사건으로 알론소가 소속되어있던 르노의 수장인 플라비오 브리아토레(Flavio Briatore)와 레이스 엔지니어들이 알론소의 팀 메이트였던 넬슨 피케 주니어(Nelson Piquet Jr.)에게 고의로 사고를 일으켜 알론소의 우승을 도우려 했던 사건)에 있어서도 알론소에 대한 의혹은 있었지만 본인도 이에 대해 부인했으며 또한 조사에서도 그가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결과가 나오긴 했다.


그러나 맥라렌과의 갈등 속에서도(팀에서 자신보단 해밀턴이 챔피언이 되길 원한다고 믿고 있었기에) 알론소는 시즌 막판까지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었다. 물론 결국엔 알론소와 해밀턴 둘 다 라이코넨에게 1포인트 차로 패배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맥라렌 시절 팀 수장이었던 론 데니스(Ron Dennis)(좌)와 알론소



시즌이 종료 된 후 알론소는 맥라렌과의 3년 합의를 상호 동의하에 해지하고 맥라렌을 떠난다. 레드불(Red Bull)과의 계약설도 있었지만 그는 친정인 르노로 돌아갔고 페라리에 새 시트가 나기 전 까지 기다렸고 그의 바람은 2010년에 이뤄진다. 만약 그가 레드불로 이적했었다면 2009년, 2010년, 2011년 모두 타이틀을 차지하며 5회 챔피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2007년에 그가 평정을 되찾고 맥라렌에 계속 남았더라면 적어도 4회 연속 챔피언도 가능했을 것이다.

 

 

알론소 본인도 이점에 대해 “저에겐 뭐 타이틀이 두 개나 있잖아요.”라며 머쓱해 한다. 물론 그의 이런 말을 다 믿을 수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의 행보를 다시 따라가 보면, 알론소는 2010년 페라리로 이적했고 그곳에서 3번째 챔피언 타이틀을 딸 기회를 얻었었다. 비록 페라리의 머신이 레드불에 비해 퍼포먼스가 딸렸지만 팀의 재앙과도 같았던 전략 실패로 마지막 그랑프리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그는 챔피언십 포인트에서 1위를 달렸었다. 아무튼 알론소는 페라리의 번영을 위해 필요한 타고난 리더라 할 수 있고 또한 팀 역시 그에게 잘 맞아 보이는 것 같다. 그 덕분인지 알론소는 페라리와 2016년까지 계약을 채결했다.

 



페라리 이적 후 해밀턴(좌)과 기자회견장에서




알론소와 해밀턴에게 있어서 서로 팀 메이트로 있던 시간은 서로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강한 인상을 남긴 시절이었다. 물론 그가 해밀턴을 라이벌로 인식하는 것으로 그동안의 문제들을 숨기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최근 알론소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해밀턴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최근에는 베텔이 향후 페라리로 이적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기뻐하고 있다.(또한 그는 해밀턴이 페라리로 이적하는 것에 대해선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해밀턴 역시 알론소와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지난 캐나다 그랑프리(주: 2012년)에서 우승한 뒤 그는 “전 페르난도와 달리는 게 좋아요. 그는 최고의 드라이버니깐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Posted by 주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