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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12 [BBC F1선정 최고의 드라이버 20인] 7. 제키 스튜어트(Jackie Stewart)

BBC 원문 기사 : http://www.bbc.co.uk/sport/0/formula1/19631769

※ 몇몇 사진은 실제 BBC기사에는 없는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제키 스튜어트(Jackie Stewart)


국적 : 영국

그랑프리 참여 : 100회

월드챔피언 : 3회 (1969년, 1971년, 1973년)

그랑프리 우승 : 27회

포디엄(시상대) : 43회

폴 포지션 : 17회

기타사항 : 영국 유일의 트리플 챔피언

               F1 안전개선에 대한 공로로 2001년 영국여왕으로 부터 기사작위 수여




제키 스튜어트는 99번의 그랑프리에 걸쳐 3번의 월드 챔피언과 27번의 그랑프리 우승이라는 거대한 족적을 F1 역사에 남겼고 이는 F1 역사에서도 그 어느 누구보다도 큰 영향을 남긴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스튜어트는 현역시절 당시 가장 뛰어난 드라이버 중 한명으로 자처할 정도의 드라이버라고 할 수 있는데, 1968년 중순부터 그가 은퇴를 선언한 1973년까지 그는 모든 사람들이 손꼽는 최고의 드라이버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기록보다도 더욱 위대한 업적을 세운 드라이버라 할 수 있다. 꾸준한 안전 캠페인을 통해 스튜어는 F1의 위험성이 크던 시기로부터 빠져나오게 하는 역할을 했고 이를 통해 현대의 F1의 모습을 만드는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드라이버들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려고 했지만 오로지 스튜어트만이 안전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드라이버였다. 그는 F1을 현대의 검투사 싸움과 같다는 생각을 거부했고 오히려 이를 스포츠로 여겨 그 누구도 죽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었다.


스튜어트는 안전벨트를 착용한 최초의 드라이버 였으며, 서킷에 방호벽을 설치하고 방염소재 옷을 만들고 피트월과 6개의 연결점을 가진 현대의 안전벨트, 그리고 머신의 충돌 구조변경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사항은 그가 현역으로 있던 시절에 주장해왔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의 안전 켐페인은 1973년 은퇴를 선언한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그로 인해 현재의 모든 F1 드라이버들은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어느 누구보다 안전문제에 민감했던 스튜어트




물론 지금 들으면 스튜어트의 안전 캠페인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들리겠지만 그가 현역으로 뛰던 시절에는 사정이 달랐다. 1960년대와 70년대 초 까지 안전에 대한 생각은 지금과 달라서 스튜어트는 그의 행동에 많은 비난을 받아야 했지만 그는 이를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안전 캠페인에 관해
“제가 현역이었을땐 말이죠. 안전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선 말을 안 하는게 더 낫었죠. 아마 제가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말만 했다면 지금보다 더 친숙한 월드 챔피언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살아있진 않았겠죠” 라고 말했었다.



그가 안전 캠페인을 시작한 계기는 아무래도 1966년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당한 사고 때문일 것이다. 당시 그는 뒤집힌 머신 안에 연료가 새고 있는 상황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고, 구출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뛰어난 레이싱 재능으로 이런 잘못된 점을 개선해낼 수 있는 드라이버였다.



그의 능력은 엄청난 자신감과 함께 F1 데뷔부터 나타났는데, 1965년 당시 스튜어트는 로터스(Lotus)팀의 입단제의를 거절하고 BRM팀으로 데뷔하게 되는데 그는 당시 로터스 소속이었던 짐 클락(Jim Clark)과 함께 뛰는 것은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클락은 모든 드라이버들이 우러러 보는 우상과 같은 드라이버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튜어트가 후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은 누가 보더라고 명확해 보였다.



클락은 그해 로터스 25와 33머신으로 시즌을 지배했지만, 스튜어트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BRM머신으로 클레몽 페랑(Clermont Ferrand)에서 열린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2위를 기록했고, 또한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는 생애 첫 그랑프리 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2년 동안 BRM팀의 경쟁력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결국 1968년 스튜어트는 새롭게 탄생한 티렐-마트라(Tyrell-Matra)팀으로 이적한다. 그해 초 친구인 클락이 사고로 사망하지만 스튜어트에겐 그가 F1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데는 큰 기회였다. 그중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역시 뉘르부르크링(Nurburgring)에서 열린 독일 그랑프리의 승리였다. 당시 그는 비와 안개를 뚫고 2위와 무려 4분 차이로 우승한다.



 

짐 클락(우)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스튜어트



 

1968년 스튜어트는 시즌 초반에 부상만 아니었어도 챔피언이 될 수 있었다. 당시 그 부상으로 그는 초반 두 번의 그랑프리를 빠져야만 했고 시즌 마지막 그랑프리였던 멕시코 그랑프리에서도 리타이어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부상이 1969년 타이틀 획득에는 영향을 전혀 주지 않았다.



69년 시즌 스튜어트와 티렐-마트라 팀은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바르셀로나 몬주익 파크(Montjuic Parc)에서는 2위와 2바퀴 차이로 이겼고 클레몽 페랑과 실버스톤(Silverstone)에서도 한 바퀴 이상 차이로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마지막 승리를 기록한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선 요헨 린트(Jochen Rindt)와 치열한 배틀을 벌이며 우승을 차지했다.


1970년 마트라와의 계약이 끝나자 티렐은 경쟁력인 떨어지는 마치의 섀시로 고전해야만 했다. 하지만 1971년 팀은 섀시를 자체 제작했고 이 머신으로 스튜어트는 다시 시즌을 압도해나갔다. 자신이 폴 포지션을 세운 기록보다 1초나 빠른 코스 레코드를 기록하면서(그것도 앞바퀴 브레이크만 작동하던 머신으로) 우승한 모나코 그랑프리를 포함해 6번의 우승을 기록했다.


1972년엔 복통으로 타이틀 도전에 실패하지만, 다음해에 생에 3번째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다. 34살의 나이에 모든 것을 이루고 최고의 위치에 올라선 그였지만 5번의 우승을 기록하면서도 그는 시즌 초부터 생각했던 은퇴를 마음먹기로 한다.



1973년 모나코 그랑프리를 우승한 스튜어트




그의 은퇴는 아주 비밀스럽게 준비했는데, 심지어 부인인 헬렌이 걱정할까봐 은퇴에 대한 말도 꺼내지 않았을 정도였다. 어쨌든 스튜어트는 그의 팀 메이트 였던 프랑스 출신의 프랑수와 시버트(Francois Cevert)를 후임으로 지정하고 은퇴를 발표한다. 이미 챔피언을 확정한 상태에서 자신의 100번째 그랑프리이자 시즌 마지막 그랑프리가 열린 미국의 왓킨스 글렌(Watkins Glen)서킷은 은퇴하기에 최고의 장소였다.


그러나 그는 레이스에 참여하지 않았다. 시버트가 퀄리파잉 도중에 사고로 사망하고 말자 그는 레이스 포기를 선언했고, 레이스에 참여하지 않고 그의 부인에게 자신의 은퇴를 말하게 된다.


어쨌든 당시 그가 기록한 27번의 그랑프리 우승은 짐 클락이 가지고 있던 그랑프리 우승기록을 깨는 것이었는데, 스튜어트의 기록이 알랭 프로스트(Alain Prost)에 의해 깨질 때 까지 14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면 그가 이룩한 업적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다. 현대의 F1 그랑프리는 스튜어트가 현역으로 뛰던 시절에 비해 더 많아졌고 머신의 안정성역시 당시에 비해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음에도 그의 그랑프리 우승횟수는 F1역사를 통틀어 6위를 기록하고 있다.


스튜어트의 드라이빙 스타일은 단순하면서도 큰 노력이 들지는 않는 느낌이었는데 그가 평소에 좋아하는 ‘머신이 알아서 가게 하라’라는 말처럼 부드러운 드라이빙을 보여줬었다. 그러나 스튜어트는 아주 부지런한 성격의 사람이다. 은퇴 후 그는 레이싱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을 이용해 수익성 있는 사업과 각종 미디어에 뛰어들었고 그의 이런 활동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다른 은퇴 드라이버들과 달리 그는 1997년부터 99년까지 자신의 팀으로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했는데, 엔진을 공급하던 포드(Ford)사에 거액으로 팀을 넘기기 전에 조니 허버트(Johnny Herbert)가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에머슨 피티팔디(좌) 니키 라우다(우)와 함께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스튜어트




스튜어트가 건강하던 시절 마이크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과 왕족에 대한 그의 애정이 때로는 그를 짜증나는 사람으로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교양 있는 말재주에 혜안을 가진 인물임은 분명할 것이다. 그의 현역시절 영향력과 은퇴 후의 성공사례는 73살의 나이인 지금에도 그를 현재 F1의 스타들만큼이나 유명하게 만드는 요인일 것이다.


Posted by 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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