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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26 [BBC F1선정 최고의 드라이버 20인] 6. 스털링 모스(Stirling Moss)

BBC 원문 기사 : http://www.bbc.co.uk/sport/0/formula1/19765439

※ 몇몇 사진은 실제 BBC기사에는 없는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스털링 모스(Stirling Moss)


국적 : 영국

그랑프리 참여 : 67회

월드챔피언 : 0회 (2위 4회, 3위 3회)

그랑프리 우승 : 16회

포디엄(시상대) : 24회

폴 포지션 : 16회

기타사항 :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논-챔피언십 드라이버

               월드챔피언을 못한 드라이버 가운데 현재까지 최다승 기록

 

 

스털링 모스는 F1 드라이버를 기록으로 평가할 때 기준이 되는 가장 좋은 드라이버다.

 

 

1958년 중순 후안 마누엘 판지오(Juan Manuel Fangio)가 은퇴한 이후에 F1에서 다른 드라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최고의 드라이버로 그를 여기기에 한치의 의심도 없었었다.

 

 

이 키 작은 대머리 영국인 드라이버는 자신의 발로 전세계의 모든 트랙을 자신의 것인마냥 달렸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는 정말이지 모든 사람들이 알만한 위대한 드라이버였다. 또한 그는 자신의 업적으로 F1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선 인물이었다. 한때 그는 미스터 모터 레이싱(Mr. Motor Racing)’이라 불렸고, 은퇴한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누구나 다 알만한 그런 인물로 남아있다.

 

 

이런 모스는 F1 챔피언을 아주 손쉽게 따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일단 당대에 같이 활동하던 많은 드라이버들 보다 모스는 더욱 뛰어났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들 – 되도록 영국국적의 팀에서 뛰려고 했던 그의 의지와 워크스팀 보단 독립팀을 선호했던 성격 그리고 무엇보다도 승리를 위한 투지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수 많은 불운들로 그는 챔피언이 될 수 없었다

 

 

 

모스와 마이크 호손(우)

 

 

 

1958년 당시 그는 영국인 최초의 F1 챔피언이 되는 마이크 호손(Mike Hawthron)에게 4번의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하고도 단 1점차로 패하며 챔피언 자리를 내주고 만다. 당시 시즌막판에 모스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에게도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어주는데 바로 그의 스포츠맨십이었다.

 

 

당시 시즌 종료까지 두 번의 그랑프리만을 앞둔 가운데 열린 포르투갈 그랑프리에서 그와 선두를 다투던 호손은 트랙을 역주행 했다는 혐의로 실격의 위기에 처해있었다. 하지만 친구이자 라이벌인 호손을 위한 모스의 사려깊은 변호는 페라리 소속의 그가 2위로 들어올 수 있게 해줬고, 이는 그해 챔피언십에서 1, 2위를 가르게 되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카사블랑카(주: 모로코의 휴양도시)에서 열린 시즌 마지막 그랑프리에서 모스는 챔피언 타이틀을 따기위해 무조건 우승이 필요해야 했고, 정말로 우승을 차지하지만 호손이 2위를 차지하면서 챔피언 타이틀을 가져가고 만다. 모스가 항상 선두를 질주할 동안 호손은 전략적인 레이스 운영으로 모스의 벤월(Vanwall)팀 팀 메이트보다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했고 경기 막판에는 같은 페라리 팀 동료인 필 힐(Phil Hill)을 제치고 2위로 들어올 수 있었다.

 

 

비록 호손의 이름이 챔피언 트로피에 새겨졌지만 적어도 호손 본인과 페라리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가 모스보다 뛰어난 드라이버라는 환상속에 빠져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듬해에도 모스는 챔피언 타이틀을 또 놓치게 되는데 BRM 소속으로 쿠퍼-클라이맥스 팀의 잭 브라밤(Jack Brabham)을 상대로 모스는 9번의 그랑프리에서 오로지 3번만 완주를 했다. 그러나 그 3번의 완주에서 2번의 우승과 1번의 2위를 달성한다.

 

 

BRM 머신의 낮은 신뢰성에도 불구하고 모스는 챔피언 타이틀을 최종전인 플로리다 셰브링(Sebring)까지 끌고 나가면서 챔피언의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했었다. 그리고 그는 폴 포지션을 차지하면 챔피언의 희망을 키웠다. 물론 머신이 다시 한 번 말을 안듣는 바람에 이는 무산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1957년 아인트리(Aintree)에서 열린 유럽 그랑프리를 우승하고 팀 메이트인 토니 브룩스(Tony Brooks 좌)와 함께

 

 

 

1960년 스파(Spa)에서의 대형사고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모스는 그해 시즌을 통째로 날려보내야 했지만 이듬해인 1961년 복귀하게 된다. 비록 그가 몰던 로터스 18 머신이 ‘상어코’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우아한 페라리 156에 비해 퍼포먼스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 해 모스는 두 번의 위대한 레이스를 팬들에게 선사해줬다.

 

 

모나코(Monaco)와 뉘르부르크링(Nurburgring)에서 그는 페라리의 머신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승리를 가져갔는데 두 대회 모두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대회였다.

 

 

하지만 그 해 시즌은 모스의 마지막 풀타임 시즌이 되고야 말았는데 1962년 4월 23일 굿우드(Goodwood)에서의 사고가 그의 커리어의 마침표를 찍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F1 말고도 다른 곳에서 열리는 레이싱에도 참여했었는데 당시 그가 몰던 로터스 차량이 알 수 없는 이유로(물론 그 당시 대부분이 그렇듯 기계적인 결함이라는 가능성이 아주 높다) 트랙을 벗어나 잔디 제방에 부딪히면서 그는 큰 부상을 당하게 된다.

 

 

사고로 그는 한달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었고 몸의 왼쪽에 부분적으로 마비가 찾아와 다시 레이스에 복귀하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개인 연습에서 (물론 사고가 났던 굿우드에서도 했었다.) 그는 랩타임을 기록할때마다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느꼈고 결국 아쉽게도 은퇴를 발표하고야 만다.

 

 

1962년 굿우드에서의 모스의 사고

 

 

 

그의 은퇴는 다양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드라이버로 여기고 있는 그의 커리어에 종말을 고하는 것이었다.

 

 

부분적으로는 사람들의 이런 평가는 그의 다재다능함에서 나오는 것일 수 있다. 당시 많은 그랑프리 드라이버들은 다른 레이싱 카테고리에도 참가했었는데 모스는 그가 참가하는 모든 레이스에서 최고의 모습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F1 그랑프리가 아닌 1955년 밀레 밀리아(Mile Miglia)(당대 최고의 스포츠카들이 1000마일을 달렸던 레이스)에서 그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

 

 

모스는 이 대회에서 전설의 반열에 들어서는데, 코-드라이버(co-driver)로 페이스 노트(주: 랠리 등에서 드라이버에게 길이나 기어변속등을 알려주는 동승 드라이버)를 읽어주던 저널리스트 데니스 젠킨슨(Denis Jenkinson)과 함께 그는 자신보다 레이싱 코스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드라이버와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메르세데스-벤츠의 300SLR을 탄 그는 당시 F1 팀 메이트였던 후안 마누엘 판지오를 30분가량 앞서며 대회 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한다.

 

 

 

1955년 밀레 밀리아에서의 모스와 코-드라이버 데니스 젠킨슨

 

 

 

당시의 이 승리는 50년대 F1을 지배하던 모스와 판지오 둘 중 모스가 더욱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중에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을 단지 이런 결과만으로 비교하는 것은 많은 문제가 있다.

 

 

이 둘은 1955년 메르세데스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당시의 결과로보면 누가 빠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모스는 그해 딱 한번 그것도 고국인 영국 그랑프리에서 판지오를 이겼다. 당시 모스는 판지오가 모스를 우승시키기 위해 일부러 져줬다는 의심을 하고 있었지만 판지오는 그가 죽을 때까지 그의 의심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었다.

 

 

판지오에 대해 그가 월드챔피언을 차지했었던 팀이 페라리의 수장 엔초 페라리(Enzo Ferrari)는 모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모스는 판지오가 자신보다 더욱 뛰어난 드라이버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엔초 페라리는 모스를 1930년대 전설적인 드라이번 타지오 누보라리(Tazio Nuvolari)와 함께 최고의 드라이버라고 여기고 있었다.

 

 

페라리의 모스에 대한 찬사는 그가 사고로 은퇴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페라리 머신에 모스를 앉히기 위한 포석이라고 할 수 있었다.

 

 

 

1950년대의 전설 후안 마누엘 판지오(좌)와 스털링 모스

 

 

 

어떻게든 모스를 시트에 앉히기 위해 페라리는 그를 계속해서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모스는 페라리에서 뛰는 것은 아주 기쁜일이라고 말하면서도 먼저 자신이 좋아하는 팀(친구인 롭 워커(Rob Walker)가 운영하던 개인 독립팀)의 파란색 차를 더 몰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반응에 결국 페라리도 수긍을 하고 만다.

 

 

당시 이 상황에 대해 모스는 “당시엔 전 그게 꽤나 공평한 양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이후 전 거의 죽을뻔한 사고를 당하고 말았죠. 참 불행하게도 결국 약속은 지키지 못했습니다”

 

 

페라리는 당시 모스가 챔피언에 오르지 못한게 조악한 포인트 방식이라고 생각한 인물 중 한명이었지만 모스 본인은 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20년 후 활약하는 그의 후배 질 빌르너브(Gilles Villeneuve)처럼 그 역시 가장 중요한 레이스는 그 본인이 뛰는 것이었지 챔피언이 되기 위한 것은 그리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일전에 그가 말하길 “저에겐 말입니다. 단지 포인트를 따기 위한 레이싱은 레이싱의 모든 것에 반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제가 빌르너브의 드라이빙 스타일을 존경하는 이유기도 하고요. 만약 당신이 어떻게서든 우승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게 과연 무슨 의미겠습니까?” 또한 “제가 관여하는 한 그 어느 드라이버라도 자신이 뛰고 있는 레이싱에서는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엔 챔피언십은 그들에게 그렇게 큰 의미가 되지 않을거라 봅니다.”

Posted by 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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