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팬들께서 소식을 들으셨겠지만, 슈마허가 프랑스에서 스키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F1 통산 최다 챔피언의 빛나는 우리의 황제가 삶을 위한 레이스에서 체커 플래그를 받고 돌아오길 기원하겠습니다.



Get Well Soon Schumi, You Are The Champion For Us All.

Posted by 주봉

BBC 원문 기사 : http://www.bbc.co.uk/sport/0/formula1/19998444

※ 몇몇 사진은 실제 BBC기사에는 없는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미하엘 슈마허(Michael Schumacher)


국적 : 독일

그랑프리 참여 : 308회

월드챔피언 : 7회(1994년, 1995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그랑프리 우승 : 91회

포디엄(시상대) : 155회

폴 포지션 : 68회

기타사항 : 역대 F1 최다 챔피언, 그랑프리 최다 우승, 최다 폴 포지션에 빛나는 F1의 황제




미하엘 슈마허의 기념비적인 업적은 뛰어난 재능과 노력하는 모습의 산물이었고 또한 기술의 뛰어난 발전, 어마어마한 돈 그리고 무차별한 광고들의 광고수익들을 낳기도 했다. 그의 업적은 한 드라이버가 F1에서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 월드 챔피언 5연패와 2000년에서 2006년까지 56승을 기록했고 전체 커리어를 통틀어 91번의 그랑프리 우승을 기록했다.



2000년대 초반을 지배하면서 슈마허는 이전의 다른 드라이버들이 받지 못한 수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정말 중요한 포인트 들이었다. - 일단 브리지스톤(Bridestone) 타이어 자체도 슈마허 개인을 위해 맞춤 생산된 것들이었다. 이런 요인들은 슈마허가 새로운 기록을 쓰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그는 스포츠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기면서 하나의 상징으로 남게 된다.



현역시절 최고의 드라이버였던 그는 수 많은 라이벌들을 물리치고 스스로 지금에 위치까지 올라섰다.



그가 현역으로 뛰던 시절은 세나/프로스트(Senna/Prost)의 라이벌 구도가 끝나면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세대들이 떠오르는 시대였고 슈마허가 직면한 라이벌들은 그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통틀어 그의 상대는 미카 하키넨(Mika Hakkinen)이었고(이 핀란드인은 빠른 스피드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만큼의 컨트롤이나 꾸준함은 부족했다.), 그리고 21세기에는 페르난도 알론소(Fernando Alonso)와 키미 라이코넨(Kimi Raikkonen)이 그와 페라리를 상대할 수 있었던 드라이버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라이벌들에도 불구하고 슈마허는 어느 시대에서도 최고의 위치에 오를 수 있을 수 있는 드라이버였다.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건 그의 맹렬한 페이스와 꾸준함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인성이 섞이면서 나온 파워 때문일 것이다.



그의 완벽한 드라이빙은 모든 랩과 모든 레이스에서 항상 선두를 달리는 것이었다. 페라리와 그가 첫 더블 챔프를 달성한 베네통(Benetton)에서 그는 이 능력을 최대한 활용했고 불쌍한 그의 라이벌들은 그에게 무방비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베네통 시절의 슈마허 그는 베네통에서 두 번의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런 모습은 그의 초반 커리어의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은 수 많은 논란들이었다.


그를 향한 논란은 그의 데뷔때부터 시작했는데, 1991년 벨기에 그랑프리에 조던(Jordan)팀 소속으로 놀라운 데뷔를 한 그는 바로 다음 레이스부터 조던팀과의 계약이 남아있는 상태임에 불구하고 베네통 팀에서 뛰게 되었다(물론 여기엔 현 F1 보스인 버니 에클스턴(Bernie Ecclestone)의 도움이 있었다.)


데뷔 후 1년 만에 그는 생애 첫 우승을 달성했고 특히 빗속에서는 정말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었다.


그리고 다음해 또 한 번의 논란이 포르투갈에서 일어났다. 당시 월드 챔피언을 눈앞에 두고 있던 알랭 프로스트를 조금은 의심되는 방어 전략으로 막으면서 승리를 차지하게 되고 이 논란은 모든 이들에게 의심을 사게 된다. 결국 이런 의심은 승리의 관점이든 논란의 관점이든 상관없이 크게 불어나고야 말았다


아일톤 세나가 1994년 윌리엄즈(Williams)로 이적하면서 윌리엄즈의 시대가 F1에서 계속되리라 예상됐다. 윌리엄즈의 FW16은 조작이 쉽지 않았던 머신이었고 베네통은 자신들의 머신인 B194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세나의 기술은 윌리엄즈의 머신을 조종하기에는 쉽지 않았지만 초반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폴 포지션을 따내고 만다. 그러나 레이스에서 결국 슈마허에게 따라잡히며 승리를 내주고 마지막 랩에서는 그와 어울리지 않게 스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의 좌절감을 표출해냈다.


일본 아이다(Aida)에서 열린 시즌 두 번째 그랑프리에서 세나는 첫 코너에서 사고로 리타이어 하게 된다. 그리고 세나는 슈마허가 승리를 향해 질주하는 것을 보면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었다. 당시 그는 슈마허가 1993년 이후로 사용이 금지된 전자 장비들을 이용하여 이득을 보고 있다고 느낀 것이었다.


이는 대격변의 시작이었다. 이몰라(Imola)에서 열린 다음 그랑프리에서 세나는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고 슈마허는 베네통에서 이적하면서 생긴 문제들을 풀며 시즌을 지배하고 만다.


영국 그랑프리에서 블랙 플레그를 무시하면서 실격을 당하기 전에 슈마허는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혀를 내두르게 하는 완벽한 스타트를 보여줬었다. 공격적인 드라이빙에 대한 징계로 슈마허는 2번의 레이스에 출전금지 자격을 받았고 팀은 불법 장비를 사용했다는 논란 속에서 증거 없음으로 혐의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징계는(두 번째 징계로써 벨기에 그랑프리 우승 후 검차과정에서 밑판(스키드 블록)이 너무 닳아 있다는 것에서 실격 처리되고 말았다) 챔피언 타이틀 경쟁이 그와 윌리엄즈의 데이먼 힐과의 싸움으로 압축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94년 아델레이드(Adelaide)에서의 데이먼 힐과의 충돌



 

결국엔 슈마허가 승리하고 말았지만, 당시 그는 이전 코너에서 트랙 밖으로 빠져 나가던 슈마허를 보고 추월하려던 힐에게 의도적으로 달려들었고, 결국 두 드라이버가 모두 리타이어하게 만들고 말았다.



1995년 윌리엄즈의 힐과 데이빗 쿨사드(David Coulthard)와 충돌을 일으킨 뒤, 슈마허는 다음해 페라리에 합류하게 된다. 마라넬로(Maranello, 주: 페라리의 본사가 있는 도시)에서의 그의 첫 시즌은 위대한 시즌 중 하나였다.


이적 첫해 그는 퍼포먼스가 부족한 머신으로 3번의 우승을 차지했고 그의 드라이빙 실력은 다른 이들보다는 다른 레벨의 실력이었다. 특히 폭우가 내리던 스페인에서 그는 매 랩당 5초는 빠른 랩타임을 보여주면서 모든 이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1997년에 베네통에서 테크니컬 디렉터였던 로스 브런(Ross Brawn)과 디자이너인 로리 바이런(Rory Byrne)이 슈마허 사단에 합류하였고 이는 F1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서막이었다. 팀 보스인 장 토트(Jean Todt)의 지휘아래, 그들은 F1 머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연구했다. 퍼포먼스 뿐만 아니라 신뢰성 그리고 꾸준히 작동할 수 있는 능력 거기에 라이벌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최소 레벨까지 모든 것이 연구의 대상이었다.




슈마허와 그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로스 브런




1997년 슈마허는 시즌 기록 실격처리로 인해(다행히 그의 승수는 인정되었지만) 윌리엄즈의 자크 빌르너브(Jacques Villeneuve)에게 타이틀을 내주고 만다. 급부상한 라이벌을 막기 위해 다시 한 번 트랙밖으로 빌르너브를 내몰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실패하고 말았고 결국 그는 이 행동으로 처벌을 받고만 것이다.


1998년에는 하키넨과의 위대한 대결에서 패배했고 1999년에는 시즌 중반 다리가 골절되는 부상으로 좌절해야 했지만 드디어 2000년에 챔피언 타이틀을 따내고 만다. 스즈카(Suzuka)에서 하키넨과의 치열한 혈투 끝에 따낸 이 타이틀은 슈마허 본인에게도 오랫동안 기다린 타이틀이었고 페라리에겐 21년만에 찾아온 왕좌였다.


이는 그의 승리의 물꼬를 틀어주는 것이었다. 슈마허와 페라리는 연속으로 4번의 챔피언 타이틀을 따내고 만다. 2003년을 제외하고는 그를 상대할 큰 적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승리행진은 2005년에서야 끝나고 만다. 규정 변경은 페라리의 독주를 막기 위한 것이었고 그 의도는 정확히 맞아떨어진 결과였다.(브리지스톤(Bridgestone) 타이어는 경쟁사인 미쉐린(Michelin)에 비해 레이스 전체를 견딜 만큼에 내구성이 없었다)



2006년 규정이 다시 바뀌면서 페라리는 또 한번 경쟁력을 가질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슈마허가 다시 한 번 타이틀 경쟁에서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모나코 그랑프리 퀄리파잉에서 고의로 머신을 트랙에 멈춰 세워 알론소가 폴 포지션을 가져가는데 방해하는 장면은 좋은 예였다. 결국 슈마허는 알론소에게 패하며 타이틀을 내주고 만다. 그러나 그의 첫 번째 커리어는 브라질에서의 강력한 반격을 가하면서 끝나는 모습을 보여줬다.



2000년대 슈마허와 타이틀을 다퉜던 페르난도 알론소(중)와 키미 라이코넨(좌)




3년 후, 삶의 의미를 찾는 투쟁 속에서 슈마허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메르세데스(Mercedes)와 함께였다. 하지만 돌아온 그에게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고, 그가 과거에 보여줬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안 좋은 퍼포먼스는 메르세데스가 루이스 해밀턴(Lewis Hamilton)과 계약하면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F1 내부에서는 슈마허가 누렸던 이점과 그의 커리어를 어떻게 여길 것인가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일었다. 그러나 그의 오랜 커리어에서 그는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모습으로도 그는 시대를 지배했던 위대한 드라이버 중 한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012년 두 번째 은퇴를 발표한 슈마허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는 수많은 승리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들에겐 그가 금요일 아침 첫 랩을 돌 때 트랙에서 어떤 공세를 펼칠지(그의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해) 궁금해 하기도 했다.


필자(엔드류 벤슨)에게는 사람들의 이런 반응보다 더 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무엇보다도 1996년 아르헨티나 그랑프리의 퀄리파잉에서의 모습이었다. 당시 그는 상당히 까다로운 머신이었던 페라리 F310을 가지고 오로지 직접 봐야만 알 수 있는 곡예에 가까운 드라이빙으로 프론트 로우(주: 1, 2번 그리드)에 올랐다.


그때와 같은 놀라운 순간들은 그 수의 상관없이 슈마허가 얼마나 위대했는지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Posted by 주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