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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16 [BBC F1선정 최고의 드라이버 20인] 14. 미카 하키넨(Mika Häkkinen)

BBC 원문 기사 : http://www.bbc.co.uk/sport/0/formula1/18281041

※ 몇몇 사진은 실제 BBC기사에는 없는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미카 하키넨(Mika Häkkinen)


국적 : 핀란드

그랑프리 참여 : 165회

월드챔피언 : 2회(1998년, 1999년)

그랑프리 우승 : 20회

포디엄(시상대) : 51회

폴 포지션 : 26회

기타사항 : 플라잉 핀(Flying Finn)의 대표적인 드라이버로 슈마허의 현역시절 최고의 라이벌 


 

아일톤 세나(Ayrton Senna), 알랭 프로스트(Alain Prost)의 기록들을 깬 미하엘 슈마허(Michael Schumacher)가 스스로 뽑는 최고의 라이벌은 미카 하키넨(Mika Häkkienen)이다.(물론 슈마허도 결국엔 알론소에게 챔피언 타이틀을 빼앗기긴 했지만 말이다)

 

 

슈마허가 마르지 않고 칭찬하는 이 핀란드 드라이버는 2000년 벨기에 그랑프리 이후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하키넨은 당시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페라리의 슈마허와 백마커(주: 선두차량에 비해 한 바퀴 이상 뒤쳐진 차들)를 파고들면서 보여준 과감한 추월로 우승을 차지했다.(이 추월은 F1역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이 되었다)



물론 앞서 말한 장면이 매우 중요하기도 하지만, 하키넨의 추월시도는 바로 전 랩에서도 있었다.

 

그 당시에 슈마허와 하키넨 이 둘은 서로 할 수 있는 모습을 다 보여준 순간이었다.. 하키넨은 빠르게 뒤따르며 안쪽으로 파고들어가려 했었고, 슈마허는 그 때문에 특유의 ‘들이 밀치는 드라이빙’을 보여주며 맥라렌의 머신을 가로 막았다. 결국 300km/h의 속도로 도망가며 라이벌인 하키넨이 뒤로 물러서게 만든다. 하키넨이 뒤로 물러선 순간, 머신의 프런트 윙이 슈마허의 페라리 머신의 뒤 타이어를 살짝 건드렸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2000년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슈마허를 추월하는 장면

 



레이스가 끝나고 이 둘이 파크 퍼미(parc ferme, 주: 레이스가 끝난 뒤 머신들이 검차를 받기위해 주차해놓는 공간)에 도착했을 때 하키넨은 머신에서 내려 슈마허의 머신쪽으로 갔다. 아마 2년전 같은 곳에서 열렸던 레이스에서 슈마허가 데이빗 쿨사드(David Coulthard)와 충돌 후 보였던 반응처럼, 하키넨이 슈마허에게 항의를 할 생각으로 그에게 달려갔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키넨은 반대로 슈마허를 만나자 차분하게 그에게 악수를 건냈다. 그가 슈마허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런 드라이빙은 잘못된 것이다. 나에게 다시 그런 모습은 보이지 마라’ 슈마허는 굳은 표정으로 잘못을 깨닫기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필자(엔드류 벤슨)는 당시 레이스가 끝나고 기자회견에 있었고, 하키넨이 슈마허의 행동에 대하여 비판을 하길 바랐던 사람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는 슈마허에 대해 나쁜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런 모습은 작년에 슈마허가 BBC Sport와의 인터뷰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미카 하키넨은 실력으로서도 저의 최고의 상대였죠. 하지만 가장 제가 그에게 가장 배워할 점은 트랙위에선 싸우는 입장이지만 밖에서는 자제심을 가진 모습이라는 거죠. 저희는 서로를 높게 평가하면서 서로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죠”



스파(Spa-Francorchamp)에서의 강렬한 사고는 이 둘이 챔피언 타이틀을 걸고 싸우는 모습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해 시즌 슈마허는 스즈카 서킷(Suzuka Circuit)에서 열린 일본 그랑프리의 승리로 하키넨을 꺾고 챔피언 타이틀을 가져갔다. 당시 이 둘의 사활을 건 레이스는 다른 드라이버들과는 다른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10년전 아일톤 세나와 알랭 프로스트의 대결을 보는듯했다.(그리고 6년 뒤 슈마허는 이 장면을 같은 곳에서 페르난도 알론소와 함께 다시한번 보여줬다.)

 


 

하키넨과 슈마허의 F1 커리어는 세나와 프로스트의 시대가 저물어 갈 때 시작했다. 둘 다 1991년에 데뷔했는데 슈마허는 남들보다 빨리 강팀이었던 베네통(Benetton)팀의 시트를 차지한 반면, 하키넨은 경쟁력이 떨어지던 로터스(Lotus)에서 2년이라는 세월을 더 보낸 뒤인 1993년에야 맥라렌(Mclaren)의 테스트 드라이버로 합류할 수 있었다.

 

 

정식 드라이버이길 포기하고 테스트 드라이버로서 팀에 입단 하는건 이상한 행동일 수 있었지만, 맥라렌의 수장인 론 데니스는(Ron Dennis)는 하키넨에게 그 해 시즌 몇몇 레이스에서 뛰게 할 것이라고 약속했고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팀의 세컨드 드라이버였던 마이클 안드레티(Michael Andretti 주: 1978년 월드챔피언인 마리오 안드레티의 아들)가 시즌 막판 세 번의 그랑프리를 앞두고 해고되자 하키넨은 포르투갈 그랑프리부터 아일톤 세나의 팀 메이트로 뛰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퀄리파잉에서 자신을 압도하는 위대한 브라질 드라이버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맥라렌 테스트 드라이버 시절 하키넨(우)과 세나(좌)

 

 

 

당시 남은 3번의 그랑프리가 하키넨에게 좋게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그의 잠재력은 확실히 보여줄 수 있었던 기회였다. 물론 결실을 맺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이후 맥라렌은 뒤떨어지는 머신과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1995년 하키넨을 은퇴의 기로에 까지 놓게 만든 사고는 당시 맥라렌으로선 최악의 순간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시즌 마지막 대회였던 호주 그랑프리 예선에서 하키넨은 타이어 펑쳐로 머신이 트랙밖으로 나가면서 방호벽에 부딪히는 대형 사고를 당하게 되고 하키넨 본인도 큰 부상을 입고만다. 사고로 두개골이 함몰되고 내출혈을 일으켰으며 혀를 삼킬 뻔 했다. 다행히 트랙밖에서의 응급조치로 그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호주 그랑프리에서의 충돌사고후 의료진에게 실려나가는 하키넨

 

 


1996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하키넨의 부상이 완쾌되었다. 또한 사고를 통해 이미 상호간의 신뢰가 굳건하던 하키넨과 데니스의 관계는 더욱 공고해졌다.



1997년 시즌 막판 맥라렌은 경쟁력있는 머신을 만들어냈고 이에 데니스는 다음 시즌에는 더욱 강력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데니스는 자신이 믿는 최고의 드라이버(하키넨)가 1승도 없이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리고 시즌 마지막 레이스에서 쿨사드가 하키넨을 앞서고 있을 때, 쿨사드에게 팀 오더를 내려 하키넨이 우승하도록 만들어준다. 후에 데니스가 이 결정을 가지고 쿨사드를 납득시키려 했지만 이 결정에 쿨사드는 크게 화를 냈다. 그리고 데니스는 1998년 시즌 개막전에서도 이런 모습을 또 보여주는데, 당시 맥라렌은 엄청난 머신의 퍼포먼스로 인상적인 개막전을 치른때였다.

 


그리고 마침내 하키넨은 1998년 시즌에 단단히 반격을 준비하고 있던 페라리의 슈마허를 꺾고 첫 번째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



하키넨은 1999년에도 다시 챔피언에 자리에 오르는데, 비록 그와 팀의 노력한 결과이기도 했지만 영국 그랑프리에서 한쪽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슈마허와 그의 팀 메이트인 에디 어바인(Eddie Irvine)이 수많은 실책으로 자멸하는 덕을 보기도 한 결과였다.

 

 

 

1999년 챔피언을 확정한 일본 그랑프리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하키넨

 

 


2000년에는 트리플 챔피언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으나, 시즌 막판 슈마허에게 포인트에서 뒤지며 챔피언 자리를 내주게 된다.

 

 

32살이 되던 해(2000년)에 그와 아내인 에르야(Erja) 사이의 아들이 태어나면서, 하키넨은 F1의 위험성에 대해서 조금씩 생각하게 된다. 2001년 시즌 개막전에서 서스펜션 이상으로 큰 사고를 당한 뒤, 그는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데니스의 고집으로 하키넨의 은퇴는 잠시 안식년을 갖는다는 뜻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더 이상 F1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하키넨은 서킷 밖에서는 매우 무뚝뚝한 성격이었기에 외부 언론에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종종 질문을 받을 때면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특별한 말을 하지 않는데 매우 둔하다는 인상을 심어줄때도 있다. 하진만 사실 이런 모습은 머신 밖에서 자신들이 사리분별을 잘 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보다 더욱 똑똑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다


 

어쨌든 그가 말을 적게 하는것에 상관없이, 하키넨은 자신의 드라이빙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드라이버 였음은 확실하다. 맥라렌 시절 67번의 그랑프리에서 그는 20번의 그랑프리 우승과 26번의 폴 포지션을 획득했다. 그 결과야 어쨌든 그가 F1에서 가장 빠른 드라이버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Posted by 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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