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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05 [BBC F1선정 최고의 드라이버 20인] 16. 넬슨 피케(Nelson Piquet)

BBC 원문 기사 : http://www.bbc.co.uk/sport/0/formula1/17871420

※ 몇몇 사진은 실제 BBC기사에는 없는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넬슨 피케(Nelson Piquet)


국적 : 브라질

그랑프리 참여 : 207회

월드챔피언 : 3회(1981년, 1983년, 1987년)

그랑프리 우승 : 23회

포디엄(시상대) : 60회

폴 포지션 : 24회

기타사항 : 80년대를 대표하는 4대 드라이버 중 1인



넬슨 피케만큼이나 커리어를 통틀어 큰 위상변화를 겪었던 드라이버는 별로 없을 것이다.

 

1980년대 중반만 해도 피케는 세계 최고의 드라이버 중 한명으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F1 커리어가 지나면 지날수록 그의 주가는 떨어졌고, 그가 F1을 은퇴 할 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은퇴를 알지 못했고 이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월드챔피언을 3번이나 차지한 이 드라이버(이를 달성한 드라이버는 단 8명뿐이다)에게 일어난 것일까?

 



1981년 브라밤에서의 피케



 

브라질의 유력한 정치인의 아들로 태어난 넬슨 피케는 1978년 중반에 F1에 데뷔하였으나 별 주목은 받지 못했다. 그러나 시즌 막판 브라밤으로 이적한 그는 1985년까지 그 팀에서 활약하게 된다.



팀 메이트였던 니키 라우다(Niki Lauda)에게 피케는 1979년 시즌에 큰 인상을 심어주었고, 결국 오스트리아 출신의 위대한 드라이버로부터 팀 내에서의 리드를 따낸다. 그리고 결국 라우다는 캐나다 그랑프리 중반 ‘뱅뱅 도는게 싫다’라는 말로 시즌 도중 은퇴를 선언하게 만든다.


 

팀의 퍼스트 드라이버로서의 피케의 상승세는 그때만큼 좋은 적이 없었다. 이적 후 2년간 피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드라이버 중 한명으로 여겨졌고 또한 팀 메이트는 큰 경쟁력이 없는 페이 드라이버(pay-driver 주 : 팀에 스폰서를 대주고 시트를 차지하는 드라이버들을 의미)들이었다. 당연하게도 팀 내에서 그와 경쟁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1980년 그는 윌리엄즈(Williams)의 앨런 존스(Alan Jones)에게 챔피언 자리를 두고 쓰디쓴 패배를 기록하고 만다.


 

하지만 다음해 세 번의 그랑프리를 우승하며 챔피언 타이틀을 가져가는데, 운 좋게도 윌리엄즈의 카를로스 로이테만(Carlos Reutemann)이 시즌 마지막 경주에서 폴 포지션을 차지하고도 7위로 들어오는 행운으로 얻은 타이틀이었다. 극한의 환경을 자랑하는 라스 베가스의 뜨거운 사막위에서 피케는 완주를 해야만 했고, 다행히 로이테만을 꺾으며 5위로 들어올 수 있었다.




1982년 독일 그랑프리에서 엘리시오 살라자르(Eliseo Salzar)와 주먹다짐을 한 피케




다음해 그의 첫 번째 챔피언 타이틀 방어는 BMW의 터보엔진의 타오르는 연기와 함께 물거품이 되고 거기에 페라리와 르노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데 바쁜 시즌이 되고 만다.


 

그러나 노력이 가상했는지 1983년 피케와 브라밤-BMW(주: 왼쪽은 섀시를 만드는 컨스트럭터, 오른쪽은 엔진을 공급하는 회사의 이름)은 챔피언에 다시 오르면서 터보 엔진으로 F1을 우승하는 최초의 인물이된다.



1984년에 엔진의 신뢰성 문제가 다시 한번 뒤통수를 쳤지만, 피케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고, 무수한 엔진 블로우 속에서도 9번의 폴 포지션과 2번의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한다.




1983년 남아공 그랑프리에서의 피케





그러나 처음에는 굳건했던 팀과 드라이버의 관계는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브라밤 팀의 보스였던 버니 에클스턴(Bernie Ecclestone)은 1985년 경쟁력이 떨어지는 피렐리(Perelli)타이어를 쓰기로 결정했는데 이 결정은 재앙이 되었다. 사실 에클스턴이 이런 결정을 한 이유에는 돈 문제가 걸려있었다. 이 결정에 짜증이 났는지 꽤나 여자를 즐겼던 피케는 레이스에 시간을 보내기 보단 자신의 보트에서 노는 삶을 더 즐기기 시작한다. 에클스턴이 그에게 연봉을 주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얼마나 가치있는 드라이버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결국 프랭크 윌리엄즈(Frank Williams)는 당시로는 최고의 연봉인 3백만 파운드에 그를 자신의 팀으로 영입하려고 했고, 피케는 고민하는 듯 했지만 이내 윌리엄즈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는 나이젤 만셀(Nigel Mansell)과 함께 팀을 이뤘는데, 전도유망한 더블 챔피언이었던 그에게 5년동안 챔피언 타이틀 도전에 실패했던 만셀은 큰 상대가 되지 않았다. 비록 만셀이 당대에 가장 빠른 드라이버라는 명성을 갖고 있었지만 86년, 87년의 타이틀을 향한 둘의 대결에서 피케는 만셀의 파워를 특유의 명석한 드라이빙으로 만셀의 무모한 드라이빙을 꺾는다.



이적 첫해 만셀은 다섯 번, 피케는 네 번 그랑프리를 우승했지만 챔피언 타이틀은 경쟁력이 좀 떨어지던 맥라렌(McLaren)의 머신으로 정교한 드라이빙을 선보인 알랭 프로스트(Alain Prost)에게 넘어간다. 그리고 프로스트는 세간의 눈에 최고의 드라이버가 피케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1987년 윌리엄즈에서 뛰던 피케




1987년 시즌 초반, 피케는 훗날 아일톤 세나(Ayrton Senna)가 사망하는 이몰라(Imola) 서킷의 탐부렐로(Tamburello)코너에서 충돌 사고를 당하지만 특유의 교활한 드라이빙으로 그랑프리에서 7승을 차지한 만셀을 단 3번의 우승으로 꺾으면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다. 그리고 그해 시즌 막판에 피케는 윌리엄즈를 떠나기로 결정하고, 그에게 최적화된 혼다(Honda)엔진을 사용하는 로터스로 이적을 발표한다.


그러나 로터스의 머신은 경쟁력이 없었고, 피케는 팀 메이트였던 사토루 나카지마(Satoru Nakajima)를 꺾는거 말고는 지난해 세나가 보여줬던 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진 못했다.


피케가 세간의 주목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조금은 짖굿게도(혹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을) 그의 다른 면모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는 만셀을 평가하기를 “무식한 돌대가리에 못난 아내나 있는 놈”이라고 악평했고 세나 역시 “상 파울루에서 택시 드라이버나 할 녀석”이라고 폄하했다. 물론 그의 사생활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 역시 줄줄이 나오고 있었다. 피케의 이런 발언들은 그의 명성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다. 피케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드라이버라면 그 누구도 피케의 이런 악평으로부터 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을 향해 달려갔다. 1990년 베네통(Benetton)으로 이적한 피케는 그 해 시즌에 2번의 의외의 우승을 차지한다. 물론 당시의 챔피언 타이틀을 도전하던 세나와 프로스트가 모두 완주하지 못한 점도 있었기는 하지만 말이다.



1991년 영국 그랑프리에서의 피케

 



1991년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마지막 우승을 차지하는데, 당시 만셀이 마지막 랩에서 너무 일찍 엔진 속도를 줄이는 실수를 했기 때문이었다(우승을 미리 축하하기 위한 성급한 판단이었다.). 라이벌의 실수를 본 피케는 자신의 우승의 기쁨을 숨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조던(Jordan)팀에서 뛰던 미하엘 슈마허(Michael Schumacher)를 그해 시즌 종반 5번의 그랑프리에 참여시키면서 피케의 F1 커리어는 그 마지막 종을 울리게 된다. 독일에서 온 이 젊은 천재는 베테랑 팀 메이트를 가볍게 누르며 4번의 그랑프리 퀄리파잉에서 승리를 가져간다.


 

그리고 호주 아델레이드(Adelaide)에서 열린 마지막 그랑프리에서, 피케는 은퇴에 대한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된다.



연습세션에서 그는 머신의 퍼포먼스를 완전히 잊고 있었고, 단 한 바퀴에서 승부를 보기위해 최대한 머신을 속도를 높이게 세팅을 했다. 슈마허보다 더 상위 그리드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작전은 성공했고 피케는 슈마허보다 0.217초 빨리 들어와 4번 그리드를 얻는다. 하지만 팀의 수석 레이스 엔지니어인 팻 시몬즈(Pat Symonds)는 피케의 들뜬 마음을 깨버렸는데, 슈마허가 기어조작 실수를 했고 그것만 아니었으면 피케보다 빨리 들어올 수 있었다고 말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위대한, 하지만 퇴색해버린 챔피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피케를 평가하자면, 그는 F1에 처음 나타났던 때 만큼 뛰어났던 드라이버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60년이 넘는 F1의 역사에서 그 보다 뛰어났던 사람은 별로 많지는 않을 것이다.

Posted by 주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