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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20 [BBC F1선정 최고의 드라이버 20인] 13. 나이젤 만셀(Nigel Mansell)

BBC 원문 기사 : http://www.bbc.co.uk/sport/0/formula1/18492552

※ 몇몇 사진은 실제 BBC기사에는 없는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나이젤 만셀(Nigel Mansell)


국적 : 영국

그랑프리 참여 : 191회

월드챔피언 : 1회(1992년)

그랑프리 우승 : 31회

포디엄(시상대) : 59회

폴 포지션 : 32회

기타사항 : 80년대를 대표하는 영국을 대표하던 드라이버




나이젤 만셀은 F1 머신이라는 드라마속의 주인공이었다.



머신 속에서 보여준 그의 과감한 추월능력이나 그의 커리어 내내 따라다니던 2인자라는 피해의식 같은 것에 상관없이, 이 콧수염난 중부출신의 드라이버 주변에는 지루하거나 따분할만한 일은 없었다. 그의 커리어에서 아일톤 세나(Ayrton Senna)와 알랭 프로스트(Alain Prost)는 때어놓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는 이 두 거인들을 상대하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F1에 보여주었다.



그의 화끈한 드라이빙에 많은 사람들이(심지어 F1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어색함을 만들고 이래저래 팀에 요구를 많이 하는 그의 까다로운 성격이 그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 때가 많았다.



80년대의 F1을 수놓았던 거인들

(좌측부터 아일톤 세나, 알랭 프로스트, 나이젤 만셀, 넬슨 피케)




만셀의 커리에어 있어서 대부분의 성공은 2번에 걸쳐 윌리엄즈(Williams)팀에서 이룬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두 번째로 팀을 떠날 때 팀의 수장인 프랭크 윌리엄즈(Frank Williams)까지도 “나이젤은 자만심이 넘치고, 거만하죠. 그리고 교만하기까지 해요” 또한 “우린 그를 드라이버로서 그리워할 것이지 동료로선 기억하진 않을겁니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세나와 프로스트가 F1의 영광을 미리 만들어놓은 운명이었던 반면, 만셀은 그를 의심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애써야만 했다. 그는 하위 포뮬러 시절부터 뛰어난 투지를 보여줬지만 항상 부족한 경제적 지원 속에서 레이스를 해야만 했다. 포뮬러 포드(Formula Ford 주: 포드 엔진 원 메이커로 이루어진 하위포뮬러)시절 목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을 때, 전신마비를 당하지 않은게 행운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도 스스로 병원을 뛰쳐나와 레이싱을 다시 했던 일화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당연히 F1에서도 그의 포기하지 않는 의지는 데뷔 초부터 나타났다.



1980년 로터스(Lotus)팀 소속으로 오스트리아 그랑프리에서 데뷔한 그는 누출된 연료가 조종석으로 세면서 발생한 화상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레이스를 펼쳤다. 그가 머신을 멈춘 순간은 기계문제로 인해 리타이어할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만셀은 로터스팀의 수장인 콜린 채프먼(Colin Chapman)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1982년 12월 채프먼의 갑작스런 죽음은 팀에서의 그의 입지 확보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만든다.



 

로터스 시절 콜린 채프먼(좌)와 만셀



 

채프먼의 자리에 올라온 피터 와르(Peter Warr)는 팀을 이끌면서 만셀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와르는 그의 자서전을 통해서 “만셀이 팀에 있을 당시, 그는 온 세상이 그의 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또한, “그의 거만한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했던 팀의 본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심하는 모습을 보였던 행동이나 태도는 그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죠” 라고 말했다.



와르는 특히 만셀이 로터스 시절 1984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의 실수를 가장 크게 비판했었다.



비속에서 열린 경기에서 만셀은 맥라렌의 알랭 프로스트에게 리드를 지키고 있었지만, 그는 언덕을 오르면서 충돌하고 만다. 그리고는 도로에 그어진 흰 선이 실수를 유발하게 했다고 불평했다. 또한 로터스 시절 만셀은 팀 메이트이자 이탈리아의 부유한 가정 출신인(거기에 성격도 만셀과는 딴판의) 엘리오 드 안젤리스(Elio de Angelis)에게 패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결국 로터스는 1985년에 세나를 영입하였고, 만셀은 윌리엄즈 팀에서 F1 커리어를 계속 이어나갔다. 만셀의 이적은 그 스스로 결정한 것이었다.

 

만셀을 영입한 윌리엄즈는 그가 팀의 퍼스트 드라이버이자 당시까지 만셀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보여주고 있던 케케 로즈버그(Keke Rosberg)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시즌이 끝날 즘 그는 로즈버그보다 2번의 그랑프리 우승을 가져가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여기에는 당시 엔진 공급업체인 혼다의 도움도 있었다.)



1986년 윌리엄즈는 더블챔피언에 빛나던 팀 메이트 넬슨 피케(Nelson Piquet)를 영입하며 만셀이 또 그를 보조하길 바랐다. 그러나 만셀이 초반 좋은 모습을 보여주자 이 둘 사이의 챔피언을 향한 경쟁심이 불 붙기 시작한다.




윌리엄즈 시절 만셀(6번차량)과 피케




결국 이 둘의 관계는 불신과 증오로 가득 차게 되었고, 여기에 윌리엄즈의 팀 오더까지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면 챔피언 타이틀을 프로스트에게 내주고 만다. 챔피언을 향한 만셀의 꿈은 시즌 마지막 대회에서 리어 타이어 펑쳐와 함께 날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윌리엄즈는 1987년 시즌내내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면 챔피언 타이틀을 가져가고 만다.


87년 시즌에 피케는 3번의 우승을 차지했지만 만셀은 7번의 그랑프리를 우승했었다.(그 중에서도 역시 일품은 실버스톤(Silverstone)에서 벌인 피케와의 배틀일 것이다.) 그러나 그해 챔피언은 피케에게 돌아가고 마는데, 만셀이 실수와 머신의 신뢰성 등으로 리타이어 하면서 나온 결과였다.



다음해 터보엔진으로 무장한 맥라렌에게 자연흡기 엔진의 윌리엄즈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만셀은 1989년 페라리(Ferrari)로 이적하게 되고 그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우승을 차지한다.



당시는 F1에 반자동 기어박스가 첫 선을 보일 때였는데, 프리시즌 테스트 주행때 뿐만 아니라 시즌 개막전이 열리던 브라질에서의 연습주행에서도 최악의 신뢰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끔찍한 상황을 인식한 만셀은 완주를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미리 빠른 비행기편을 예약하지만 비행기는 타지 못하고 만다. 왜냐하면 머신은 끝까지 잘 굴러갔을 뿐만 아니라 불가능 할 것이라던 우승까지 이뤄냈기 때문이었다. 이 모습에 페라리의 팬들인 티포시(tifosi 주: 페라리의 극성팬들을 일컫는 말)들에게 그의 투지를 ‘사자왕’(Il Leone)이라고 부르며 찬양하도록 만들게 한다. 브라질뿐만 아니라 헝가리에서도 12그리드에서 출발해 맥라렌의 세나를 제치고 우승하며 큰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1989년 브라질 그랑프리에서의 만셀




그러나 1990년 맥라렌에서 세나와의 갈등으로 이적한 프로스트가 페라리로 오면서 만셀과 페라리의 관계도 틀어지기 시작한다.


세나와 챔피언을 놓고 다투던 프로스트는 이적 첫 해 5번의 그랑프리 우승으로 만셀을 압도했고 이 결과에 만셀의 좌절감과 팀에 대한 의심은 커져만 간다. 그리고 영국 그랑프리에서 사고로 머신이 부서지며 리타이어하자 그는 관중들에게 장갑을 집어던지며 은퇴를 발표한다.



그러나 그가 정말 은퇴하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실제로도 그는 윌리엄즈로 돌아오려고 협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결과를 생각한다면, 이 이적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1991년 윌리엄즈의 FW14는 가장 빠른 머신이었지만 만셀은 초반의 패배로 세나를 뒤따라 잡을 수 없었고 거기에 윌리엄즈의 반자동 기어박스의 문제도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다음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엑티스 서스펜션을 장착한 FW14B는 F1 역사에 길이 남는 명차였고 만셀은 시즌을 압도하며 9번의 우승과 14번의 폴 포지션을 차지하며 지난해에 챔피언을 차지 못한 것에 아쉬워하던 사람들에게 타이틀을 선물해준다.

 



F1역사에 명차로 길이남는 FW14B와 만셀




비록 고액을 요구한 만셀도 만셀 다웠지만, 1993년 시즌을 위한 재계약이 결렬된 것은 참으로 하나의 드라마 같았다. 좀 어이없게도 협상을 방해한 가장 큰 요인은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팀이 그에게 제공해준 호텔방 수였다. 그러나 혹자는 그가 윌리엄즈에 계속 머물렀으면 프로스트와 다시 한 번 같은 팀에서 뛰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점도 계약 결렬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실이 어쨌든, 만셀은 F1에 등을 돌려 인디카(IndyCars 주: 미국의 대표적인 오픈 휠 타입 레이싱 카테고리)로 이적했고 데뷔 첫해에 압도적인 모습으로 챔피언에 오른다.



인디카에서 활약하던 시절 1978년 F1 챔피언 마리오 안드레티(좌)와 함께한 만셀




F1이 가장 치열한 스포츠였던 그 시절, 나이젤 만셀은 위대하고 화려했던 드라이버 중 한명으로 기억될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기억될 것이다.


Posted by 주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