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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22 [BBC F1선정 최고의 드라이버 20인] 19. 그레이엄 힐(Graham Hill)

BBC 원문 기사 : http://www.bbc.co.uk/sport/0/formula1/17406716

※ 몇몇 사진은 실제 BBC기사에는 없는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아들 데이먼 힐(Damon Hill)의 증언도 있음을 알린다.




그레이엄 힐(Graham Hill)

국적 : 영국

그랑프리 참여 : 179회

월드챔피언 : 2회(1962년, 1968년)

그랑프리 우승 : 14회

포디엄(시상대) : 36회

폴 포지션 : 13회

기타사항 : 현재까지 유일한 모나코 그랑프리, 르망 24시, 인디에나폴리스 500마일 레이스 우승자, 아들 데이먼 힐과 함께 유일한 F1 부자(父子)챔피언



F1월드챔피언, 인디 500우승, 르망레이스 우승이라는 이른바 ‘모터스포츠 트리플 크라운’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레이엄 힐에 대한 이미지는 재능을 타고 났다는 평가를 받던 동료 짐 클락(Jim Clark)과는 달리 대체적으로 고난을 이기며 정상에 오르는 도전자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아버지의 이미지에 대해 아들인 데이먼은 좀 다르게 생각한다. 20살때부터 F1에 뛰어든 클락과 그보다 5년이나 늦은 24살에 F1에 데뷔하여 5차례나 모나코 그랑프리를 우승한 자기 아버지를 비교해서 누가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드라이버냐는 것이다. 뭐 이런 의문은 아들인 데이먼에게도 항상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데이먼 역시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뛰어난 재능의 드라이버라기 보단 항상 ‘도전자’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아버지에게 짐 클락이 있었다면 그에게는 슈마허가 있지 않았는가!)

 

 

“상대가 더욱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상대를 꺾을 수 없다는 건 아니지요. 제 아버지의 경험이 말해주지 않습니까? 그냥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뿐이죠. 근데 만약 같은 실력에 더 열심히 노력한다면 누가 더욱 뛰어난 드라이버겠습니까?” 데이먼의 이 말은 몇가지 점을 시사해주기는 한다.



그러나 어쩌면 이 순위의 상위권에 있는 짐 클락과 비교해서 데이먼의 아버지를 위한 변호가 꽤나 힘들어 보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건 그레이엄의 많은 업적들이 그가 가진 뛰어난 재능을 가려버릴때가 많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레이엄 힐 1960년대에 영국에서 그랑프리 레이싱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의 차분한 성격과 스타성 그리고 특유의 콧수염은 그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상징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TV와 각종 미디어에 노출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특유의 스타일만큼이나 그 스스로의 능력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동시대의 짐 클락, 제키 스튜어트(Jackie Stewart), 댄 거니(Dan Gureny), 존 서티스(John Surtees), 요헨 린트(Jochen Rindt), 잭 브라밤(Jack Brabham) 등과 함께 F1역사에서 그를 최고의 드라이버라고 여기지 않는가?



 

1967년 네덜란드 그랑프리에서 짐 클락(좌)과 함께한 그레이엄 힐(우)

 



1962년 BRM에서 처음으로 월드챔피언에 오른 뒤 6년이 지난 1968년에 그는 불혹의 나이에 가까웠을 때 짐 클락의 포뮬러 2에서의 사고사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던 로터스팀을 이끌고 챔피언을 다시 차지했다. 그러나 힐은 1964년에도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었다. 시즌 마지막 그랑프리에서 존 서티스(John Surtees)에게 1점차로 패배하여 챔피언자리를 내줬는데, 당시 서티스와 같이 페라리에 있던 팀 메이트 로렌조 반디니(Lorenzo Bandini)가 서티스에게 2위자리를 내주면서 가능한 일이었다.

 


1969년 다섯번째이자 그의 마지막 모나코 그랑프리 우승의 순간 



챔피언십을 다툴 동안, 힐은 모터스포츠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랑프리라고 할 수 있는 모나코 그랑프리를 7년사이에 다섯 번을 우승하며 ‘미스터 모나코’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훗날 이 기록은 아일톤 세나(Ayrton Senna)에 의해 깨지게 되지만, 그의 모나코 그랑프리 우승경력 중 그 스스로도 최고의 레이스로 꼽히는 경기는 1965년 그랑프리였다. 당시 그는 다른 차량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탈출로를 이용하였고 선두와 34초나 뒤처지게 되지만, 놀라운 드라이빙을 보여주면서 우승을 차지한다. 1969년에 두 번째로 챔피언십을 차지한 후에도 그는 또 다시 모나코 그랑프리를 우승하며 그의 진가를 입증했다. 그러나 그해 시즌 종반 왓킨스 글렌(Watkins Glen)서킷에서 열린 미국 그랑프리에서 타이어 고장으로 인한 사고로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시즌을 포기한다.



그리고 부상이후 그는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던 그레이엄 힐이 아니었다. 비록 1972년 르망 24시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의 드라이빙은 예전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1974년에는 스스로 팀을 설립하여 그랑프리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5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예선도 통과하지 못하는 굴욕적인 성적을 보였고, 결국 그는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비록 은퇴는 했지만 그는 후배인 토니 브라이스(Tony Brise)를 중심으로 팀을 이끌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75년 11월, 테스트를 마치고 프랑스에서 돌아오는 길에 엘스트리(Elstree)에서 짙은 안개를 만난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후배인 브라이스와 나머지 팀 맴버 4명과 함께 세상을 뜨고 만다.

 



아들 데이먼과 함께




그의 죽음은 남은 유족들(아내인 베티와 아들 데이먼 그리고 두 딸)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을 주고 만다. 왜냐하면 당시 그레이엄이 들었던 보험은 효력이 없었고 또한 그와 동승하여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유족과의 보상 문제까지 붉어졌기 때문이다.


 

간혹 그의 비극적인 마지막이 그의 커리어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 잘 안 알려진 그의 터프하고 굴하지 않는 모습까지 흐리게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는 아마 F1역사에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어준 그에 대한 안타까운 애정표현일 것이다.


 

당시의 눈으로 보자면 그의 드라이빙 능력은 모컴과 와이즈의 코미디(주: 1960년대 영국을 대표하는 코미디 듀오)와도 바꿀만한 것이었다. 그레이엄 힐은 정말로 그런 위치의 인물이었다.

Posted by 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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