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원문 기사 : http://www.bbc.co.uk/sport/0/formula1/17633414

※ 몇몇 사진은 실제 BBC기사에는 없는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잭 브라밤(Jack Brabham)


국적 : 호주

그랑프리 참여 : 128회

월드챔피언 : 3회(1959년, 1960년, 1966년) 

그랑프리 우승 : 14회

포디엄(시상대) : 31회

폴 포지션 : 13회

기타사항 : 드라이버로서, 팀 수석으로서 모두 월드챔피언을 차지한 유일한 인물


잭 브라밤은 F1 월드챔피언을 3회 이상 차지한 위대한 드라이버들 중 한명이지만, 그의 업적은 단순히 챔피언 타이틀로만 한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까지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팀으로도 F1을 우승한 유일한 드라이버이기 때문이다.


호주출신의 이 투지 넘치는 드라이버는 15년간 F1에서 활약하면서 두 번의 황금기를 보냈다. 또한 그의 현역시절은 스털링 모스(Stirling Moss), 짐 클락(Jim Clark), 제키 스튜어트(Jackie Stewart), 요헨 린트(Jochen Rindt)와 같은 전설적인 라이벌(물론 BBC F1이 선택한 20명의 위대한 드라이버 명단에 포함된 드라이버들이다)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대부분이었다.



드라이버로써 뿐만 아니라, 브라밤은 자신의 이름을 딴 팀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한데, 훗날 이 팀은 현재 F1 수장인 버니 에클스턴(Bernie Eccelestone)에게 넘어가 1983년 넬슨 피케(Nelson Piquet)와 함께 최초의 터보 엔진차량으로 챔피언십을 차지하게 된다.


 

드라이버로서의 브라밤은 그의 모터스포츠 커리어를 통틀어서 그 비중이 적게 다뤄지면 면이 있는데, 그러나 아직도 그의 능력은 과소평가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04년 재회한 두 라이벌 잭 브라밤(좌)과 스털링 모스(우)



1959년 그가 처음으로 월드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을 때 그는 이 리스트 상에서 최상위권 순위에 있는 스털링 모스뿐만 아니라, 모스가 그렇게 높게 평가하던 페라리의 토니 브룩스(Tony Brooks)까지 상대해야 했다. 물론 이때의 챔피언 타이틀은 브라밤의 드라이빙이 모스의 머신이 고장이 날 때까지 페이스를 끌어올리면서 따낸 타이틀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레이싱에서 언제나 그는 모스와 같은 곳에 있거나 더 앞서 나갔다. 1960년에 브라밤은 쿠퍼팀에 있으면서 시즌 초반 다섯 개의 그랑프리를 모두 석권하며 두 번째 챔피언 타이틀을 가져간다. 물론 이때에도 로터스의 불안한 머신으로 고전하던 모스에게 직, 간접적인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말이다.



비록 그 다음해에는 이른바 ‘상어코’라 불리던 페라리 156머신이 시즌을 지배하게 되지만, 브라밤은 1962년에 자신의 팀을 세우고 몇 년간 팀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

 


 

그리고 1964년 드디어 팀의 첫 그랑프리 우승이 프랑스 루엥(Rouen)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이 승리는 브라밤이 아닌 그의 팀 메이트인(또한 위대한 드라이버이기도 한) 미국인 댄 거니(Dan Gurney)가 만들어낸 우승이었다. 브라밤은 1966년까지 자신의 첫 우승(브라밤 팀 드라이버로서의)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 프랑스 그리고 랭스(Reims)에서 자신의 머신으로 그랑프리를 우승한 최초의 드라이버가 된다. 그리고 이 승리는 서막에 불과했다. 그는 영국, 독일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우승하며 개인 통산 세 번째 타이틀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비록 머신 제작에 있어서는 그의 동료였던 론 터래낙(Ron Tauraunac)이 주도했지만 브라밤 역시 머신 개발에 깊이 관여했기 때문에 드라이버로서 팀 수석으로서 우승한 이 기록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1966년 그에게 영광을 선사해준 브라밤팀의 BT19 (2007년 촬영사진)



 

1966년 그는 호주의 렙코(Repco)사를 통해 새로운 8기통 3리터짜리 포뮬러 엔진을 개발하기로 하고 그해 이를 발표하였다. 당시로서는 실린더 갯수를 늘리는 경향에 반하는 개발이었는데, 그러나 당시 코즈워스(Cosworth)도 새로운 엔진을 개발하고 있었고 다음해 코즈워스는 DFV엔진(주: 훗날 70년대 코즈워스의 전성기를 이끌어주는 엔진으로서 이 엔진으로 70년대에만 7명의 드라이버가 월드챔피언이 된다)을 개발하게 된다. 비록 렙코사의 엔진은 강력하지는 않았지만, 무게와 힘을 배분하는데는 탁월해서 드라이버들에게 핸들링과 타이어 관리에서 남들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승부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사이 브라밤의 주요 라이벌들은 각자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페라리의 존 서티스(John Surtees)는 시즌 도중에 쫓겨났으며, 짐 클락은 로터스 엔진의 문제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혹의 나이에 그의 마지막 챔피언 타이틀을 따낸 브라밤이었지만 여전히 그는 현역이었고, 1970년 은퇴를 결심하기 까지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1970년 그의 마지막 시즌은 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요헨 린트(Jochen Rindt)와의 벌였던 대결이 인상 깊었던 시즌이었다. 브라밤은 린트의 뛰어난 드라이빙에 굴복하고 말았는데, 거기에 마지막 코너에서의 충돌사고 까지 일으키면서 린트에게 챔피언 타이틀을 내주고 만다. 브라밤이 만족할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시즌이었지만 몇몇 불운으로 인해 영국과 독일에서의 승리를 놓치고 말았다. 만약 이 두 곳에서 우승을 했다면 그의 마지막 시즌을 챔피언으로 끝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같은 호주출신의 후배 드라이버 마크 웨버(좌)와 함께

 



브라밤은 상대가 어떻게 해서든 그보단 앞서 나가기위해 골머리를 썩게 만드는 강인한 드라이빙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1967년 실버스톤에서 페라리의 크리스 아몬(Chris Amon)과의 4위를 놓고 벌인 장시간의 배틀에 대해 아몬은



“잭은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죠. 돌덩이, 잔디, 흙먼지 뭐 아무거나 상관없었습니다. 레이스 전에 그가 백미러를 조정 하는걸 봤었어요. 그런데 그중 하나가 떨어져 나가 제 머리를 때렸죠! 근데 잭은 남은 다른 하나를 조정 하려는 것 같았죠. 전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거울을 조정하는 것이지 그걸 떼어 버리려는 것인지 확신이 안갔죠”


 

“30랩정도 돌았을 때 였죠. 그가 나머지 거울까지도 없애 버렸고, 그 뒤론 우리는 치열한 배틀을 벌였죠. 그 머신은 꽤나 넓어서 거울이 시야에 방해가 안 되는데도 말이에요. 뭐 어쨌든 나중에 그가 와서 저에게 방해해서 미안하다고는 했죠. 근데 그가 거울이 없어진지도 그리고 제가 그 뒤에 있었는지 몰랐다고 하는거에요!”


 

잭 브라밤은 이 순위에 있는 다른 드라이버들 보다 카리스마가 덜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룩했던 위대한 업적은 그를 F1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드라이버로 만들어 준 것은 분명할 것이다.


Posted by 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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