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원문 기사 : http://www.bbc.co.uk/sport/0/formula1/19874880

※ 몇몇 사진은 실제 BBC기사에는 없는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알랭 프로스트(Alain Prost)


국적 : 프랑스

그랑프리 참여 : 202회

월드챔피언 : 4회(1985년, 1986년, 1989년, 1993년)

그랑프리 우승 : 51회

포디엄(시상대) : 106회

폴 포지션 : 33회

기타사항 : '서킷위의 교수'라 불리던 8~90년대 최고의 드라이버



우아한 드라이빙을 보여줬던 알랭 프로스트는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라이벌 구도의 주인공 중 한명이기도 했다.



이 조그마한 곱슬머리의 프랑스인은 4번의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따냈고, 숙명의 라이벌만 아니었다면 미하엘 슈마허(Michael Schumacher)가 기록한 7번의 챔피언 타이틀을 먼저 쉽게 따냈을 수도 있었던 드라이버였다. 실로 대단한 커리어지만 승률이나 스피드에 있어서 아직까지도 그의 기록은 아일톤 세나(Ayrton Senna)에 비해 저평가 되거나 무시되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세나가 계속 살아 있었다면, 그는 프로스트의 이런 이미지에 크게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위대한 아일톤 세나가 스스로도 칭송하던 드라이버는 프로스트 뿐 이었고, 세나를 극가의 스피드로 몰아넣은 것 역시 프로스트의 스피드였다. 또한 세나와 동등한 조건에서 그를 꺾었던 사람은 프로스트가 유일했다 – 그의 승률 역시 세나보다 살짝 높다




1982년 남아공 그랑프리를 우승한 프로스트




모든 이들의 생각대로 세나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이싱 드라이버라면 프로스트는 어느 시대의 인물보다도 그와 근접한 모습을 보여준 드라이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나가 풀 파워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면, 프로스트는 상당히 절제된 모습을 보여줬었다. 일단 트랙에 올라서면 그는 무모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최대한 경제적으로 머신을 몰았다. 그 덕에 그의 머신은 고장이 나는 일이 거의 없었고 그의 드라이빙은 언제나 부드럽고 정교했다.


그가 일찍 브레이크를 잡으면 머신은 우아하리만큼 균형을 잡으며 에이펙스(apex 주: 자동차가 코너를 돌 때 코너의 정점 부분) 지나 마치 로켓과 같은 스피드로 그가 코너를 빠져나갈 수 있게 해줬다. 마치 그 어느 누구나 별 큰 노력없이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하지만 스톱워치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과거 그와 함께 팀을 이뤘던 존 왓슨(John Watson), 케케 로즈버그(Keke Rosberg), 장 알레시(Jean Alesi), 데이먼 힐(Damon Hill) 모두 프로스트가 머신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모습에 경탄하면서 팀을 떠나갔다. 심지어 나이젤 만셀(Nigel Mansell)도 1990년 그와 같이 페라리(Ferrari)에 있으면서 프로스트가 상당히 격한 핸들링을 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1985년 독일 그랑프리에서의 프로스트




하지만 그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세나와의 엄청난 라이벌 관계일 것이다. 프로스트가 1990년 페라리로 이적하기 전인 88년부터 89년까지 이 둘의 관계는 부침을 거듭하면서 F1 역사에 그동안 없었던 긴장감을 조성했다. 이 둘이 트랙 안팎으로 대결을 거듭할수록 둘은 편히 있은 경우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를 극한의 경지로 몰아넣었고 이는 그들에겐 두려움을 보는 이들에겐 즐거움을 선사해줬다. 오로지 최고의 실력을 가진 드라이버만이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고 프로스트와 세나 이 둘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실력의 소유자들 이었다.


1988년 두 거인이 맥라렌(McLaren)에서 충돌하기 직전에 프로스트는 이미 F1을 재패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그는 두 번의 챔피언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다시 한 번 타이틀을 가져갈 수 있었다.


1985년 페라리의 미셸 알보레토(Michele Alboreto)의 추격이 있었지만 시즌 중반이후 페라리의 추격이 실패하면서 압도적인 모습으로 타이틀을 따냈고 이는 그가 오랫동안 염원하던 승리였다.


페라리의 질 빌르너브(Gilles Villeneuve)가 사망한 1982년, 르노의 머신이 최악의 내구성을 보여주지만 안았어도 프로스트는 챔피언을 획득하는데 순항을 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1983년에는 시즌 종료까지 4번의 그랑프리를 앞둔 상황에서 그는 포인트 상으로 꺾을 수 없는 위치에 있었지만 후에 있게되는 브라밤-BMW(Brabham-BMW)의 넬슨 피케(Nelson Piquet)의 맹공과 논란이 있지만 새로운 연료로 인해 타이틀 도전에 실패하고 만다.


1984년에도 프로스트는 맥라렌 이적 후 바로 챔피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는 시즌 전체에서 7번의 우승을 차지한 반면 팀 메이트였던 니키 라우다(Niki Lauda)는 5번의 우승만을 차지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라우다가 승리한 4번의 그랑프리에서 프로스트는 선두로 달리다 머신의 문제로 뒤처지는 바람에 승리를 내준 것이었고, 라우다의 5번째 그랑프리 우승은 그가 머신의 문제로 피트 레인에서 출발하는 바람에 이뤄진 것이었다. 결국 프로스트는 라우다에게 0.5점차 뒤지면 챔피언 타이틀을 내주고 만다.




F1 역사상 최고의 터보엔진 머신으로 손꼽히는 맥라렌의 MP4-4




1980년 중반은 F1에 있어서 첫 번째 터보 엔진의 시대였다. 84년부터는 연료제한 규정이 시작되었고 프로스트의 드라이빙 스타일은 이 당시에 아주 잘 맞는 것이었다.


계속 말하지만 그는 레이싱이 시작되면 조용히 연료와 타이어를 아끼면서 선두를 공략하면서 레이스 중반에 이를 때 까지 선두를 공략했다. 그리고 갑자기 TV 화면에서 프로스트가 페스티스트 랩을 찍는 모습을 보여줬고 피트스탑이 이뤄지면서 그는 어느새 레이스의 선두로 치고 올라왔다.



프로스트는 최고의 올-라운드 드라이버로서 F1 역사에 한 획을 그었는데 아무래도 이는 1986년 시즌의 위대한 승리 때문일 것이다. 윌리엄즈-혼다(Williams-Honda)의 만셀과 넬슨 피케의 추격을 뿌리치면서 프로스트는 완벽한 드라이빙으로 시즌 마지막 레이스를 역사에 길이 남을 경기로 만들며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그해 아델레이드(Adelaide)에서의 우승으로 챔피언을 차지하지만, 그의 기쁨은 헬멧의 시야만큼 그리 오랫동안 계속되진 않았고 커리어의 정점에서 거대한 위협이 수면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세나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드라이버로서 새롭게 떠오르고 시작했고 세나는 프로스트를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1988년 맥라렌이 혼다 엔진을 사용하면서 팀의 수장이었던 론 데니스는(Ron Dennis)는 프로스트의 새로운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고, 프로스트는 피케가 들어오면 방해만 될 것이라 했고 결국 세나를 영입하게 된다. 세나의 영입과 관련된 당시의 이런 아이러니는 그 누구도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을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맥라렌의 내부 단결이 좋아지는 것 보다 세나에게로 힘이 기우는 것을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었다.


뛰어난 재능에 경쟁심이 넘치고 레이싱 지능이 뛰어나면서 심지어 팀내 정치적으로도 약삭빨랐던 이 둘은 언제나 트러블을 일으켰다.


세나가 맥라렌에 입단하면서 프로스트를 목표로 삼았지만 그가 입단한 2년간 프로스트는 설명이 필요없는 최고의 드라이버로서 세나를 공평한 조건에서 꺾는 모습을 보여줬다. 당시 맥라렌의 코디네이터였던 조 하미레즈(Jo Ramirez)는 그 둘의 라이벌 구도를 이야기 했었는데 세나는 대부분의 F1 머신이 그렇듯이 조금은 완벽하지 않은 머신을 몰고 다녔는데, 간혹 프로스트가 그가 좋아하는 완벽한 세팅을 찾는 날이라도 되면 아무리 세나라도 그를 건들릴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스포츠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라이벌이었던 알랭 프로스트와 아일톤 세나(좌)




둘의 관계는 1988년 내내 나쁘지 않았고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었다. 그러나 포르투갈 그랑프리에서 세나가 선두로 치고 올라가려던 프로스트를 피트월에 밀치면서 이 둘의 관계는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세나는 공평한 조건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따길 원했는데 그런 생각은 1989년 이몰라에서 깨지고 만다. 세나가 레이스 전에 첫 코너에서는 싸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다. 결국 시즌 중반 프로스트는 맥라렌을 떠난다고 발표했고(페라리에 챔피언 타이틀을 선사해주겠다는 말로) 세나의 머신의 신뢰성 문제와 일본에서의 충돌로 인한 세나의 석연치 않은 실격으로 인해 또 한 번의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하게 된다.


둘의 라이벌 관계는 1990년에도 계속 됐다(긴장감은 덜했고 부정의에 분노한 세나에게 초점이 맞춰지기도 했지만). 둘은 시즌 막판까지 타이틀을 다퉜고 또 한 번 스즈카(Suzuka)에서 충돌이 일어나고야 만다.(하지만 1989년과 달리 이는 세나의 반칙이었다.) 하지만 1991년 팀의 잘못된 판단으로 레이스에서의 우승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페라리 수뇌부 인내심은 한계를 드러냈고 결국 시즌이 끝나기 전에 머신을 트럭에 비유한 프로스트의 인터뷰에 딴지를 걸며 그에게 해고 통보를 한다.


그 어느 드라이버들도 생각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는 1992년을 안식년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3년 윌리엄즈로 돌아오게 된다. 38세의 나이로 그가 필요로 했던 것은 빨리 달리는 것 뿐 이었고 녹슬지 않은 기량으로 여전히 시즌을 지배하면서 7번의 승리와 13번의 폴 포지션으로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하게 된다.


프로스트는 2년계약을 맺은 상태였지만 1994년 세나가 윌리엄즈와 계약하면서 다시 한 번 세나와 함께 하는 것이 싫었고 결국 두 번째이자 마지막 은퇴를 발표하고 만다.




1993년 윌리엄즈에서 4번째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프로스트




5년동안 그가 팀 수장으로 있던 것은 가장 지우고 싶은 기억이지만(주: 프로스트는 1997년부터 프로스트 그랑프리라는 팀을 만들어 2001년까지 F1에 있었다), 프로스트는 많은 이들에게 천사같은 드라이빙과 슈마허 다음으로 가장 많이 그랑프리를 우승한 드라이버로 기억되고 있고 또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역사상 위대한 드라이버로 남아있다.


그가 남긴 이런 유산들은 지금까지도 존경받아 마땅하다.


Posted by 주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