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원문 기사 : http://www.bbc.co.uk/sport/0/formula1/19051559

※ 몇몇 사진은 실제 BBC기사에는 없는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니키 라우다(Niki Lauda)


국적 : 오스트리아

그랑프리 참여 : 177회

월드챔피언 : 3회 (1975년, 1977년, 1984년)

그랑프리 우승 : 25회

포디엄(시상대) : 54회

폴 포지션 : 24회

기타사항 :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 챔피언을 차지한 F1의 불사조

               페라리와 맥라렌에서 모두 챔피언을 차지한 유일한 드라이버



니키 라우다가 페라리 머신에서 내려와 인상을 찡그리며 헬멧을 벗었다. 헬멧을 벗은 그의 방염 마스크는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한 시간 반 동안의 레이싱을 마치고 조심스레 마스크를 벗으려고 했지만 마스크는 얼굴을 덮고 있던 붕대와 늘러 붙어 있었다. 결국 그는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마스크를 벗었다.



1976년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라우다는 4위를 기록했다. 독일 뉘르부르크링(Nurburgring)에서의 사고로 인한 화상으로 병상에 누워 병자성사를 받은 지 42일 만에 돌아와 기록한 순위였다.


그의 1976년 몬자(Monza)에서의 레이스는 정말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용감한 행동이었을까?


불안한 챔피언십 리드와 그의 페라리에서의 상황을 생각하면 라우다는 그의 상태를 무시하고 레이스에 참여해야 했다. 후에 그는 당시 상황을 이야기 하면서 레이스에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상당히 겁을 먹고 있었다고 말했다.


“저는 계속해서 제 안의 두려움을 빨리 그리고 완전히 없애야 했다고 말했죠” 라우다는 자신의 솔직한 전기인 ‘지옥에서 돌아와(원제 : To Hell And Back)’에서 “솔직히 그건 거짓말이었어요. 그건 제가 겁을 먹고 있다고 제 라이벌들에게 시인하는 꼴이었지요. 정말 바보같은 일이었죠. 어쨌든 몬자(Monza)에서 전 엄청나게 겁을 먹은 상태였죠” 라고 시인했다


라우다는 당시 몬자에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최상의 상태라고 느꼈기에 그랑프리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병상에 누워있을 동안 뉘르부르크링에서의 사고를 생각하면서 그는 “완전히 끝장날 뻔 했지”라고 되뇌었다.




1976년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복귀 기자회견을 하는 라우다



어쨌든 그의 의지력 하나는 정말 대단하다 할만하다.


완치가 불가능할 정도의 부상을 입고 거기에 화상으로 손상된 눈꺼풀을 재건하기 위한 성형수술을 앞둔 상황에서 그는 다시 자신을 사지로 몰았던 머신위에 올라탔다. 물론 그의 몸 상태는 생각보다 더 안 좋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세대의 페라리 머신 중에서 가장 높은 4위를 기록했다.



뉘르부르크링에서의 라우다의 사고는 F1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드라이버 중 한명인 그의 커리어에 매우 큰 사건이었다.


라우다는 매우 개인적인 성격에 무뚝뚝하며 지극히 사무적인 마인드를 가진 거기에 유머감각이라고는 없는 전형적인 오스트리아 사람이었다. 그는 커리어를 통틀어 25번의 그랑프리를 우승하고 3번의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다. 거기에 2년이라는 ‘은퇴’기간이 있었기에 그는 왠만한 위대한 드라이버 순위에 이름을 기록하는 드라이버가 되었다. 그런 결과에도 그가 처음에 F1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라우다는 1971년 마치(March)팀에서 뛰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대출을 해서 시트를 얻었다. 그리고 2년 뒤 BRM으로 이적할 때 또 다시 대출을 하게 된다.



데뷔한지 3년만에 라우다는 현재(주: 2012년) 페라리의 회장인 루카 디 몬테제몰로(Luca 야 Montezemolo)와 함께 페라리에 입성한다. 데뷔 후 3년간 최악의 시즌을 보낸 그는 페라리를 재건하며 F1을 지배하게 된다. 경험미숙으로 인한 손해는 페라리에서 그가 데뷔하던 시즌은 1974년 시즌에 불과했다. 1975년 시즌 F1역사에 길이 남는 명차인 페라리 312T와 함께 시즌을 지배하며 챔피언에 오른다.



1976년 시즌에도 초반 9번의 그랑프리에서 5번의 우승과 2번의 2위 그리고 한번의 3위의 기록하며 손쉽게 챔피언 자리에 오르는 듯 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그의 목숨을 앗아갈뻔했던 뉘르부르크링 사고를 겪게 된다.



당시 라우다는 뉘르부르크링이 F1을 치르기에 매우 위험한 서킷이라고 수차례 밝힌적이 있었다. 그는 아이펠(Eifel)산을 따라 개설된 이 20킬로미터가 넘는 서킷에서는 응급조치가 이뤄지긴 너무 멀다고 강조하면서 만약 드라이버가 사고를 당한다면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8월 1일 그의 사고는 그의 주장이 맞다는 것을 입증하고 말았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라우다는 베르크베르크(Bergwerk) 코너를 들어오면서 전속력으로 미끄러졌고 방호벽과 충돌하면서 그의 머신은 화염에 휩싸이게 된다.




1976년 독일그랑프리에서의 라우다의 사고



충돌 후 머신에 갇혀있었지만 의식은 있었고 다행히 그는 뒤따라오던 네 명의 드라이버에 의해 머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얼굴에 화상과 유독가스를 흡입하고만 상태였다.



그날 이후로 그는 얼굴에 화상으로 인한 상처로 오른쪽 귀를 거의 잃은 채 살아야 했고 그의 이런 흉측한 얼굴에 언제나 덤덤한 마음으로 살아야 했다. 그의 외모에 대해서 그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만약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느낀다면 그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밝혔다. 사실 라우다의 사고는 평소 그의 무자비한 행동의 말로라는 생각도 든다.



레이스가 다시 시작 되면 처음 레이스가 시작할 때의 기록은 삭제된다는 규정으로 인해 그의 1976년 독일 그랑프리 기록이 공식적으로는 레이스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기록된 것에 대해 묻자 그는 “맞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상당히 단호한 톤으로 “자 근데 제 귀에는 어떤 일이 생겼는지 보이시죠?” 라고 되물었다.


어쨌든 그 사고로 라우다는 2번의 그랑프리를 불참하게 되었고, 맥라렌 소속의 친구이자 라이벌인 제임스 헌트(James Hunt)에게 챔피언십 포인트 격차를 줄이게 만드는 발단을 제공하고 만다. 마지막 그랑프리였던 일본 그랑프리 직전까지 라우다는 헌트에게 단 3점차로 앞서고 있을 뿐이었다.


일본 그랑프리 레이스 당일, 심한 폭우가 몰아치면서 레이스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모든 드라이버들은 처음에는 레이스 참가를 거부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위는 대회를 강행하기로 했고 라우다를 포함한 세 명은 레이스 참가를 거부하고 만다. 페라리는 그와 함께 조직위의 결정에 항의하면서도 그를 레이스에 다시 참여시키기 위해 그를 계속 설득했지만 실패로 끝나고 만다. 결국 헌트는 3위를 기록하면 단 1포인트 차로 라우다를 꺾고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


엔초 페라리(Enzo Ferrari)는 라우다의 결정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는 이전에 라우다의 사고 이후 당시 페라리의 미비한 지원과 함께 둘의 관계를 최악으로 치닿게 하는 결정타였다.



엔초 페라리(좌), 그리고 루카 디 몬테제몰로(우)와 함께한 라우다




1977년 라우다는 페라리에 계속남아 두 번째 챔피언 타이틀을 가져가지만 시즌 막판의 두 번의 그랑프리를 불참하고 바로 브라밤(Brabham)으로 이적해 1978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알파 로메오(Alfa Romeo) 엔진을 장착한 브라밤의 머신은 경쟁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물건이었고, 그렇기에 자연히 라우다의 F1에 대한 열정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다음해 시즌 막판 그는 은퇴에 대한 마음을 먹기로 하고 그 결정을 바로 따르기로 한다. 캐나다 그랑프리 연습 세션이 한창 있던 도중에 라우다는 브라밤 팀의 수장이었던 버니 에클스턴(Bernie Ecclestone)을 데려와 “서킷을 뱅뱅 도는게 지루하다”고 말하면서 은퇴를 선언한다. 은퇴를 선언하고 그는 헬멧과 레이스 용품 모두를 남겨두고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자신의 항공사를 경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2년 뒤 맥라렌의 수장이었던 론 데니스(Ron Dennis)는 라우다를 설득하여 그를 F1으로 복귀하게 했고, 복귀 첫해 3번의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2년 후 라우다는 시즌을 지배했던 맥라렌 머신과 함께 팀 메이트인 알랭 프로스트(Alain Prost)를 노련미로 누르면서 역대 최소 점수 차인 0.5점차로 3번째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 당신 이 두 맥라렌 듀오는 16번의 그랑프리에서 12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챔피언을 차지했던 1984년 알랭 프로스트(우)와 함께




1985년 라우다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물론 프로스트를 막아내면 네덜란드 그랑프리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시즌 막판이 은퇴를 위한 최적의 시기라 판단하고 다시 한 번 은퇴를 발표한다. 은퇴 후 그는 독일 RTL 방송국에서 해설을 했고 그의 특유의 예리한 분석과 유머는 서킷 밖에서도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라우다는 상당히 우아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경제적 도움이 필요하거나 돈을 모을 때 그는 절대로 그걸 무모하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드라이빙에서는 무모할 정도로 빠른 드라이버였다. 또한 그는 공학이나 팀 내 정치적인 일에도 자신의 가지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순수히 재능만으로 따진다면 그가 질 빌르너브(Gilles Villeneuve), 페르난도 알론소(Fernando Alonso) 그리고 루이스 해밀턴(Lewis Hamilton) 보다 위에 있을 수 있을까?? 그렇진 않은거 같다. 그러나 그 어느 스포츠맨도 죽음의 문턱에서 두 번이나 정상에 오른 라우다의 커리어를 비슷하게 따라가지 못했기에 그가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이런 기록은 앞으로도 계속 남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는데 도움을 주신 피트크루로 활약했던 나이젤 뢰벅(Nigel Roebuck)씨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Posted by 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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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ㄹㄹㄹ 2013.02.05 1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라우다는 부잣집에서 태어났음에도 집에서 레이싱 드라이버를 반대해서
    집을 나와 무일푼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실력도 뛰어났지만 정말 의지가 강한 사람인 것 같네요

    • 주봉 2013.02.06 23: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일푼으로 나와서 챔피언이 되었을땐 오히려 쿨하게 챔피언 트로피를 동네 카센터 무료새차 교환권이랑 바꿨다고 하네요ㅋㅋㅋ

  2. 블랙GK 2013.10.12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니키라우다 기자회견 사진 펌해도 될까요?
    문제가된다면 지우겠습니다^^